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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내부의 적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 / 김지현역
출판 : 반비 201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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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종말이라는 이슈에 이어 민주주의 자체도 변질되어 가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책이다. 민주주의는 용어 자체의 의미에서처럼 국민이 권력을 갖는 체제이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미리 정한 기간 동안 법을 제정하고 국가를 운영할 대표자를 선출한다(p.13). 저자는 이러한 지적을 하기에 앞서 본인은 인생의 1/3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나머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낸 경험을 책에서 풀어놓겠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포퓰리즘, 극단적인 자유주의, 메시아주의 등이다. 즉 민주주의의 구성 요소인 인민, 자유, 진보 중 어느 하나가 적정선을 넘어 유일한 원칙임을 자처할 때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한다고 한다.


책의 주제를 다루기 전에 1600여 년 전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독교는 정치권력을 얻기 시작했으며 신학적인 논쟁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대표적 논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을 주된 예로 들고 있다. 논쟁의 주제는 '자유의지'와 '죄와 구원'의 문제였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죄는 물려받아서가 아니라 선조의 행동을 모방한 결과라고 말한다. 즉 신은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 역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죄를 짓고 안짓고의 문제는 인간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서 자기통제와 정신력을 배우며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능력을 낙관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았다. 모두 자신의 잘못이고 오직 자신만을 탓할 수 있을 뿐이다(p.26). 이에 반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유의지의 결과라고만을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원죄는 인간 종에 속한 모든 개체 특유의 결핍과 취약점인데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과는 무관한 근본적인 결함이라는 주장을 한다(p.28). 원죄로 가득한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신의 은총에 기대야 한다(p.29)는 것이다. 이 논쟁은 결국 418년에 펠라기우스의 사상이 이단 선고를 받는 것으로 결말을 보았지만 그 이후 이 논쟁의 불시는 아직까지 남아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 이후 루소나 몽테스키외 같은 프랑스의 인문주의자들은 그 어느 쪽에서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 이후 펠라기우스의 사상은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개인의 운명(도덕)보다 사회의 운명(정치)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신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의 논쟁에서 정치적 행위와 권력자들이나 대중에 대한 담론으로 이행한다(p.40). 대중들이 요구가 폭발하기 전에 몽티스키외의 중용의 태도는 마르퀴드 콩도르세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격렬하게 비판받는다. 콩도르세는 필라기우스의 사상과 유사하게 인간이 법을 충분히 적용한다면 지상의 악을 일소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자신을 완성하고 능력을 펼치게 될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원죄는 제거해야 할 미신일 뿐이며 행복은 사후의 천국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논의가 급진전되어 더 나아가서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평등과 자유의 이상을 내세우면서 특유의 궁극적인 목표와 이에 이르는 특별한 방법(혁명과 공포정치)를 지향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를 정치적 메시아주의라고 부른다. 이는 콩도르세의 사상과는 좀 다른 양상으로 움직인 결과이다. 


이러한 정치적 메시아주의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변형된 형태로 나타났다. 첫번째 단계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에 헉명전쟁과 식민전쟁의 형태로 나타나며, 두번째 흐름은 공산주의으로, 세번째 흐름은 민주주의로 나타난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예상했던 바와 같다. 즉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하는 서방 선진국들이 참여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모든 악이 선의 이름으로 실현되고 숭고한 목적이라며 정당화되는 역설이라는 것이다. 선을 추구하지만 그 선은 결국 과거의 종교를 대체하고 있을 뿐 큰 차이는 없으며 나만이 선하다는 주장으로 인해 전쟁을 선포하고 다른 나라 국민들의 인권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국 이러한 오만함과 헛된 욕망이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답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제 정치에 복무하는 도덕과 정의는 도리어 도덕과 정의를 해치고 강대국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단순한 도구로 전락한다. 그리고 강대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위선적인 장막으로 나타난다. 선과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메시아주의 정치는 서로를 파괴한다. "천사가 되려고 하다가 짐승이 된다."라는 파스칼의 문구가 이런 상황을 더없이 잘 설명해 준다. 일군의 국가가 다른 국가에 자신들의 의지를 무조건 관철하는 이상, 국제질서는 개선되지 않는다. 정치적 혼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그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의 눈앞에서 실추되고 심지어 민주주의를 장려하는 국가에서조차 민주주의 원칙이 부식될 위험이 있다.  - p.90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의 화살은 신자유주의로 넘어간다. 국가의 활동은 공공질서 유지 정도로 최소화되어야 하며 최소화되어야 하는 것은 경제활동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와 연결된다. "부를 제한"하거나, "공정하게 분배"해서도, 심지어 "과도한 부의 추구를 막아서도" 안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입장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마냥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자유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좌파는 검열, 금기, 도덕 등 행동에 최대한 자유를 부여하되 경제적 자유는 국가가 제한해야 한다고 하며, 우파의 경우는 이와 반대의 주장을 한다. 두가지 자유를 모두 추구할 수는 없으며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이 정치의 이슈라는 점을 지적한다. 공산주의는 경제적 자유를 지나치게 통제를 해서 비판을 받았는데 신자유주의는 최근의 금융위기에서 경험했다시피 지나친 방임이 낳은 결과로 재분배가 되지 않는 현상을 낳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계급의 소멸을 위한 투쟁 대신 이익의 조화를 가정한 뒤 시장의 자연법칙에 의존하는 역사법칙에 찬성한다. 여기서 다시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으로 짧게나마 되돌아 보게 한다. 적당한 통제와 적당한 자유의 경계선은 어디인지 저자도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자세를 일관되게 보이고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의 행태를 "야만화"라는 단어까지 쓰면서 비판을 마무리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는 지켜야 할 도를 넘어선 나머지 탈이 났다(p.199)고까지 표현한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위험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옷을 걸치고 있기 때문에 그 위험요소가 눈에 띄지 않아 위험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스스로 쇄신의 길을 걷게 될지 아니면 포퓰리즘으로 치달을지 아직 결말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데 해답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강조한다. 


역사가 불변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섭리가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지 않으며, 미래가 의지에 달려있다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 p.207



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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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누와르
국내도서>소설
저자 : 나서영
출판 : 심심 201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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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소설로 구현하고 있는 세상은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세계이다. 소설은 용주군의 '건전한 지배자'들이 '불건전한 지배자'들에 의해 밀려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불건전하다고 한 이유는 많은 자금을 가지고 자신만의 부와 세력을 늘리며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지배자들이기 때문이다.

 

용주군은 인구 6만의 작은 도시로 이권하라는 청년이 운영하는 ‘형제’와 ‘한우리회’라는 사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형제’는 이권하를 포함해 여섯 명의 남자로 구성된 친목단체이고, ‘한우리회’는 용주군의 번영회라고 할 수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군수 후보로 나선 심상문이 마을 중심부에 용진마트를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나서 상황이 달라진다. 용진마트는 시골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대형 쇼핑몰이다. 용진마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마을에서 여러 분야의 중소 영세 상인들이 상점을 차리고 운영하고 있었으며 서로 도와주는 관계를 가졌는데 이는 모두 한우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용진마트가 들어서자 영세 상인들이 영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폐업하기 시작했으며 중소 납품업체들은 용진마트의 단가후려치기에 어쩔 수 없이 납품을 하거나 또는 그나마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버리기도 했다. 또한 용진마트는 직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용이 되어 급여를 일방적으로 삭감하거나 해고 통보를 하는 몰상식한 경영을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용진마트의 독주에 대해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폭력배를 동원해 해산작전을 하게 되며 경찰은 오히려 용진마트의 편에 선다. 여기에 대해 마을의 건전한 지배세력을 추구했던 한우리회는 반감을 가지고 여기에 대응전략을 세우게 된다.

 

전체 내용을 읽다보면 우리의 현실 세계를 반영한 듯한 인상을 준다. 용진마트는 요즘의 대형마트를 떠올리게 하며 대형마트로 인해 중소 상점들이나 납품업체들이 겪는 어려운 현실들이 일부 반영이 되었다. 용진마트라는 이름 자체도 신세계그룹(이마트)의 정용진 부회장을 떠올리게 하니 네이밍이 참 절묘하다. 하지만 일부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측면을 과장된 듯한 인상을 주며, 대기업의 횡포라는 것이 이 정도로 심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금융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의 자유방임주의적 성격이 많은 폐해를 가져오고 있으며 앞으로 개선되고 혁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소설에서 구현하는 것처럼 디스토피아의 극단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체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다소 늘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한우리회를 중심으로 마을의 중요 안건이 처리되는 앞부분과 용진마트 건축 이후 영업이 개시되면서 벌어지는 마을의 몰락 상황이 부드럽게 연결되면서 소설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과연 이런 일이 있겠느냐 싶으면서도 만약에 현실에서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분하고 치가 떨리는 상황의 연속이라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도 자본만을 내세우고 겉으로만 상생을 내세우는 요즘의 대기업들의 횡포를 '누와르'라고 표현하면서 그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주주나 자본가들의 이익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공공선을 위해서 대기업들이 좀더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사회계몽이나 사회비판적인 성격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보니 우리 사회의 병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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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유토피아
국내도서
저자 : 에릭올린라이트 / 권화현역
출판 : 들녘 201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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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현존하는 권력, 특권, 불평등 구조의 대안에 대해 진지하고 심도있게 논의해 보려는 시도로 1990년대 초에 시작한다. 유토피아가 공상의 세계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로 만들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매혹적인 이름이라 생각된다. 그 매혹적인 이름에 걸맞게 저자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사회제도의 여러 영역들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점점 종말을 고하면서 사회주의가 그것을 대체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점점 종말을 고해가는 신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원칙들을 위반하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3장에서 저자는 열한 가지의 명제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저자도 언급한 대로 이 열한 가지 비판의 거의 대부분은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 대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국가와 경제 모두에 대한 유의미한 민주적 통제라는 생각에 근거한 사회주의 개념을 제안한다(p.75). 이 대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4장부터 7장의 네 개 장으로 구성된 Part 4에서 ‘리얼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한 리얼 유토피아의 모습 중의 하나인 ‘무조건적 기초소득(p.304~)’에 대해 관심이 간다. 요즘 복지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저자가 주장한 이 ‘무조건적 기초소득’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사람들이 받게 되는 ‘보편적’ 보조금을 말한다. 생산수단과 분리되어 있는 노동자들을 생산수단과 연계함으로써 더 자발적인 노동을 하도록 하자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 근거를 포함하여 저자는 여섯 가지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솔직히 가능하겠느냐는 점에서 부정적인 의견에 한 표를 던지고 싶지만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구현이 가능할 지에 대한 의견은 보류하고 싶다.


‘무조건적 기초소득’에 앞서 ‘사회적 경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퀘벡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퀘벡의 육아 서비스와 노인들을 위한 비의료적 자택돌봄 서비스를 예로 들고 있는데 그 재원으로는 현존하는 권력의 불평등 구조를 혁신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가의 보조금에 대해서 자본주의 기업의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은 이해를 하지 못한 수준에서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기 이르다고 보지만 현재로서는 역시 실현가능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광범위하고 다소 대중적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쓰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같이 진짜 대중적인 독자들이 읽기에는 상당히 어려웠다. 총선과 대선있는 올해 좀더 정치적 이슈에 대해 사유하고 특권층에 치우친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바라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의 신자유주의 비판 이론들과 함께 저자가 주장하는 이 책의 제안들을 깊이 있게 연구한다면 허울뿐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에서 적용 가능한 실재 유토피아의 구현가능성에 대해 그 가능성을 진보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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