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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니컬러스 에번스(Nicholas Evans) / 김기혁,호정은역
출판 : 글항아리 201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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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라는 책 제목과 커버이미지만 봐서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느낌의 스릴러나 호러 영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기서 ‘죽는다’는 것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언어’를 말한다. 세상의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고 있는 언어가 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혹시나 사라지는 언어가 있다는 것에 대해 가슴아프다는 느낌이 없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분이라면 책을 읽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한가지 언어만 사용하다가 신이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바벨탑을 세웠으나 이에 대한 응징으로 신은 인간의 언어를 흩어놓았다고 한다. 즉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저자는 이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다양성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싸인으로 인식한다. 인간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였으나 국가나 지역끼리 다투기 시작하면서 서로 분리되었고 언어도 달라졌는데 그 이후로 인간들은 좀더 작은 집단을 이루어 서로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는, 멕시코의 한 구전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으며 점차 쇠퇴해가고 있다는 점을 탄식하고 있다. 인류사가 발전해가면서 농경문화와 군대로 무장한 영토 팽장주의자들에 의해 언어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으며 더 이상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세계 속 수천 개의 언어가 이와 유사한 운명에 고통받고 있다. 화자가 1억이 넘는 10여 개 언어의 지배에 이끌려 언어 다양성어 쇠퇴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 p.58

 

언어의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로 먼저 캐번디시 바나나의 예를 들면서 이 바나나 종 하나만 있다는 것은 생산과 효율을 최대화하기에는 좋지만 새로운 곰팡이균 하나가 종 자체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 같은 생물학적 종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다양성의 장점을 설파하는데 피시먼(Joshua Fishman)이라는 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 언어나 문화를 다른 언어나 문화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볼 때 깊고 창의적인 상호작용과 통합적 안목을 얻게 된다는 점(p.64)”을 다양성의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결국 언어 유산이 손실된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의 문화나 거주지가 손실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비극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연구는 ‘다양성’의 관점보다는 ‘보편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위험하다는 지적한다. 하나의 언어는 그 언어의 문법이나 구사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언어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는 점이 언어의 다양성이 가지는 또하나의 소중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저자는 언어가 죽게 되었을 때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언어의 죽음이 왜 문제가 되며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이 서서히 붕괴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깊이 있는 학술적 연구자료를 근거로 하여 풀어나가고 있다.

 

다양한 언어가 가지는 소중함에 대한 사례로 설명하고 있는, 에이즈 바이러스 제1형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약물 프로스타린이 발견된 과정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세계 도처의 원주민들은 오랜 역사 동안 자연을 세밀히 관찰하고 자연의 산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실을 자기네 언어의 단어와 표현을 통해 전하고 있다(p.67). 이러한 언어가 담고 있는 전통 문화는 식물 약효에 대한 세부지식도 담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프로스타린이 발견된 과정에서도 해당 원주민 언어(사모아어)를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토착어의 어휘들은 특정 식물과 동물 간의 생태적 유대관계를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에 언어학자와 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 간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식은 현재 큰 위험에 처해 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겨우 수백 명의 화자가 쓰는 언어 속에서만 이 모든 지식이 유효하며, 화자들이 다른 언어로 사용 언어를 바꿀 경우 그 전달이 단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68

 

흥미로운 예를 또하나 들면 진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10진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누구나 그렇듯 인간은 어려서부터 손가락 10개를 가지고 셈법을 익혀왔다. 하지만 파푸아뉴기니 지방에서 쓰이는 옥사프민어의 셈 체계에 따르면 엄지부터 13단계에 거쳐 14에서 코에 이르고 다시 반대쪽으로 내려와 27에서 반대편 엄지에 이르게 되는 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폐거래를 위해 영어식 수체계를 쓰게 되면서 이 27에 기초한 수 체계는 점점 폐기되고 있다고 한다(p.143). 인류 공통이 사용하는 ‘표준’의 관점에서 보면 효율적일 것이다. 몇해 전 우리나라에서는 인치나 평과 같은 단위를 쓰지 말도록 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표준으로 채택되지 않은 또 다른 많은 ‘표준’들도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을 것이고 오랜 역사와 문화의 결과물로 전달되는 유산일텐데 이를 모두 무시하게 되면 인류문화의 발전이 저해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

 

소수 언어들이 사라진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화적, 군사적, 종교적 라이벌 집단의 언어가 아닌 이상 다른 언어에 무관심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 예로 저자는 로마의 사례를 들고 있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게테어나 에트루리아어 등이 지금까지 전해졌다면 언어학적 가치가 상당히 높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몇몇 단어들을 제외하고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겪었던 일제 식민치하에서의 언어 말살 정책도 이에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사라지는 언어들에 웬지 모를 측은함이 느껴지면서 언어의 다양성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소중한 책이다.

 

언어는 커뮤니케이션과 의사전달에 있어서 동시성을 갖추어야 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문자이다. 인더스 문자나 자포텍 문자처럼 앞으로도 해독이 되지 못할 문자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도 그 문자를 사용하는 언어가 전달되었다면 해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언어의 소멸과 함께 문자의 해독불가 상태도 선조들의 역사를 보전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언어가 남아았다면 살아남은 현대 언어 자료를 갖가지로 활용하여 암호를 풀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해당 지역 언어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 탓에 이러한 해독 시도도 계속 늦춰지고 있다. - p.304

 

서평을 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편협된 시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책을 출판하여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열어준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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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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