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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자
국내도서
저자 : 가노 료이치(Ryouichi Kanou) / 한희선역
출판 : 황금가지 201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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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라는 설명을 보고 책을 읽게 되었다. 그동안 추리소설은 여러 권 읽었지만 하드보일드라고 하여 돌이켜보니 지난 몇년간 하드보일드를 표방하는 소설은 하라 료의 ≪안녕, 긴 잠이여≫가 처음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2013년 12월에 이 책을 읽었으니 거의 1년 4개월 여만에 하드보일드 소설을 다시 손에 잡게 되었다.



그렇게 읽게 된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에 떠오른 두 단어는 바로 책의 제목에도 포함된 단어인 '환상'이라는 단어와 '로맨스'라는 단어다. 하드보일드 계열의 추리소설에서는 흔하지 않은 소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환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이유는 실제로 소설의 내용이 환상이라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고 난 뒤에 느낌이 아마도 환상 속을 헤매다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지 않았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읽고 난 뒤 나의 느낌도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을 읽자마자 등장하는 인물의 캐릭터를 파악하기 위해 인물들의 이름과 특징들을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중반부를 넘어서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결국 마지막에 메모된 인물을 세어보니 (몰입하여 읽다가 빠트린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60명 가까이나 되었다.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의 소설에서 50여 명의 캐릭터를 녹여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저자의 창의적인 스토리텔링 능력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인 가노 료이치의 작품은 99년도 작품로서 그의 작품은 이 소설이 처음 읽게 되는 것인데 인터넷 서점을 통해 조회해보니 ≪제물의 야회≫라는 책이 또 하나 번역, 소개되어 있어 다시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 죽음의 원인을 찾는 과정을 그리는 일련의 추리소설이나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구성은 그다지 독특하지 않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 여타 일반적인추리소설처럼 경찰이나 탐정이 아니라 변호사라는 것 정도. 기혼남이었던 주인공이 5년 전에 잠시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여자를 5년 만에 만났고 그 다음날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었다.


주인공은 35살의 변호사인 스모토 세이지라는 인물이다. 5년 전에 헤어진 여자인 고바야시 료코와 우연히 길에서 만났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어 바쁘게 사라져버리고 다음 날 아침 살해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집 전화의 자동응답기에 그녀가 사건을 의뢰하고 싶다는 말을 남긴 것이다. "한가지 상담해 줬으면 하는 게 있어. 내일 다시 전화할게."


이 사건을 조사하던 경시청 형사는 술집 마담이었던 여자의 살인사건을 그저 단순한 치정에 의한 살인으로 단정하고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흥신소 직원까지 개인적으로 고용하면서 살인의 배후를 조사하던 주인공 스모토는 살해당한 고바야시 료코가 실제 고바야시 료코라는 이름의 여자가 아니라 다른 인물이 아니었을까 예측한다. 그 과정에 야쿠자로부터 폭행과 협박으로 죽음의 직전까지 놓이게 되지만 결국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었고 그녀가 사건 해결을 전제로 주인공에게 보내려고 했던 편지를 받아 읽게 되는 것으로 소설을 끝맺게 된다. 


소설의 대략적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리뷰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각 캐릭터들을 통해서 들려주는 말들은 추리소설의 흥미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사를 돌아보게 만들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대체 그녀에게 뭐였을까? 잃고 나서 계속 그것을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만나서 묻고 싶었다. 나는 네게 뭐였지? 그렇게 묻고 싶다고 계속 바랐다. 그러나 대답은 아마 그녀가 사라진 것 자체로 답이 나와 있었다. 나는 다만 자신이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을 뿐이다.  - p.549


5년 동안 잊고 살았던 그녀였지만 서로 공감하며 고민을 나누고 싶었던 저자의 속내가 드러나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결국 사건 해결 이후에도 '눈을 감고 바라기만 하면 언제든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된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스모토는 그녀를 정말 사랑했고 그녀와의 세월을 살아보고 싶었다고 고백(p.121)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외면한채 5년 동안 도망쳐버린 자신을 탓하며 사건 해결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게 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스토리의 큰 흐름에는 큰 상관은 없지만, 사건 해결의 실마를 제공해 주었던 우즈키 가오루코의 말에 공감이 가는 대목이 있어 인용해 본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듯 보이려는 요즘 세태를 비웃으며 비꼬는 촌철살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시민이라는 놈들은 모두 힘 없는 어린양이지만, 귀염성이 있는 어린 양은 아니잖아. 손을 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바로 포기하고 송곳니를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는 주제에, 가까이에 표적으로 삼을 만한 상대가 있을 때에는 음험하기 짝이 없는 괴롭힘을 시작하지. 집단이 되어 누군가를 규탄하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믿고 있는 거야."  - p.658


모든 사건 정황을 베일에서 벗겨내고 사건의 배후에 숨어있던 자들을 규탄하기 위해 마지막 결심을 했던 그녀와, 그런 그녀를 돕기 위해 목숨을 무릎쓰고 진실을 밝혀내는 주인공의 모습이 자못 슬프게 느껴진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고나 할까. 이미 죽어버린 여자와의 슬픈 로맨스를 떠올리게 만들며 끝맺음하는 이 소설은 나에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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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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