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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돼지머리를 제물로 즐겨쓰는가 (양장)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이돈환
출판 : 말과창조사 201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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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이돈환님이 꾸었던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저자는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한국인은 고사를 지내면서 돼지 머리를 쓰는데 저자가 등산 이후 시산제가 끝나고 잠깐 잠이 든 사이에 돼지머리가 말을 걸어오면서 돼지들이 사는 세상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현자돈, 장군돈, 어미돈과 아기돈, 청년육돈, 토종돈 등 다양한 돼지들이 나와서 돈환님과 대화를 한다.


제목이라든가 그림은 좀 코믹스러운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돼지들이 하는 말들을 보면 이 땅의 생명윤리와 환경, 그리고 가축 사육에 대한 비판과 지적들이 이어지고 있다. 몇달 전 읽은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 책은 통계자료를 내밀면서 다소 학술적인 접근을 한 책이라면 이 책은 풍자적이고 우화적인 방법을 써서 환경문제를 비평했다는 것이 다른 점일 것이다.


앞서 말한 그 책을 통해 특히 우리나라에서 소,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좀더 개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이 책을 통해 그런 생각들을 다시 한번 갖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짐승이라고 하더라도 약간의 사육 환경 개선을 통해 좀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할 수 있을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들이다.


저자 돈환님이 갔던 곳은 스피릿 월드라고도 하며 돼지들의 표현으로는 축생계라고 하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람을 가지고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잠깐 스친다. 돼지들이 바라보는 인간세상의 모습은 그저 좋지만은 않은 듯 하다. 저자가 돼지를 신비롭게 바라보았듯이 모든 세상만물을 나 중심이 아닌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교훈을 얻는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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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유혹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쉬즈위안 / 김영문역
출판 : 글항아리 201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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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G2라든가 BRICs와 같은 신흥국가의 이미지일 것이다. 어떤 나라든 내부에 현정부나 과거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고 동조하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흔히 폐쇄적인 국가일 것으로 생각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도 찬성과 동조의 시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이 많다는 점이 놀랍다. 물론 이집트나 리비아 등의 정권이 무너지는 사례들을 통해서 국민 개개인의 힘이 모였을 때 얼마나 큰 힘을 가지게 되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중국도 충분히 다양한 시각들을 가진 국민들의 의견이 표출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동안 티벳과 같은 중국 내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이나 집단적인 반발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인데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중앙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지게 된 새로운 중국의 모습이다.



얼마전 랑셴핑이 저술한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라는 책을 읽고 누구나 생각해왔던 중국의 발전해 가는 모습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내부 전문가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 <독재의 유혹>저자인 쉬즈위안의 경우도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 중의 하나였다. 랑셴핑의 저술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국한되어 있다면 이 책은 다소 광범위하게 폐쇄적이고 독재적인 정권의 한계에 대해 상당히 소상히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중국의 발전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중국의 이미지는 더욱 강력하고 선진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만 '발전주의'라고 칭할 수 있는 발전지향주의에는 그 밖의 문제들은 은폐되고 부패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국가는 오직 발전을 통해서만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자연스러운 합법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그 국가의 기타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든 간에 저절로 은폐될 수 밖에 없다. (중략) 그리하여 끊임없이 단순화되는 발전주의의 신념 속에서 GDP 성장은 중국인들에게 현란한 영광을 선사해 주었다.  - p.36

 

책의 초반부에서는 중국의 성장만 바라보고 그 성장의 이면에 감추어진 모습에 대해 외면하는 여러 학자들과 그들의 저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존 나이스빗, 조슈아 라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성공적인 중국의 모습은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베이징 컨센서스란 중국은 자체적으로 독특한 정치, 경제, 사회 제도를 만들었고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시스템이라는 것(p.29)이며, 더 나아가 중국의 경제적 성공은 정치적 성공으로 연결(p.41)되어 '메가트렌드 차이나'에 걸맞는 위상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실제 중국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만약 중국에서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관리들이 민주, 자유, 실사구시,창신(創新) 등과 관련된 주제를 이야기할 때, 그들의 마음은 이런 어휘의 진정한 의미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구호, 표어, 공문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논리를 다르고 있다. - p.33

 

너무나 신랄하고 파격적인 비판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비판한 중국의 모습은 또한 정치권력의 부패, 국유기업의 붕괴, 타이완 및 홍콩과의 마찰, 미국과의 긴장관계 등으로 인해 앞날이 불투명해진 중국(p.32)이다. 이와 같은 중국의 왜곡된 시각을 과거 소련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교한다. 앙드레 지드는 소련을 방문하여 '역사상 전례가 없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희망을 가득채워준다'고 하였고, 영국의 웹 부부는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일종의 신문명이라고 공언하였다(p.46). 이러한 논조는 소련은 1917년 혁명 이후 계획체제를 창조하여 사회의 부를 통일적으로 분배하는 성과를 가져왔지만 미국은 대공황 이후이 쇄락해 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자본주의가 정치, 경제 그리고 인간성의 위기로 빠져들자 소련의 집체주의와 평등사상이 참신해 보였기 때문에 등장했지만 정작 자본주의의 소외현상은 질책하면서도 소련이 저지른 갖가지 악행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p.45). 하지만 저자는 그들이 바라보았던 왜곡된 소련의 진실은 '발전 수준이 저급한 슈퍼 대국'에 불과하다(p.52)고 평한다.

 

소련은 늘 프롤레타리아를 대표한다고 말했지만, 관료 시스템이 모든 걸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련은 전면적인 인간 해방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아울러 소련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풍요로움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고 호언장단했지만 사실은 드넓은 황무지를 창조했을 뿐이었다.  - p.52

 

이러한 소련이 발산한 빛이 항성과 같았다고 한다면 베트남이나 쿠바 등에서 등장한 공산정권의 빛은 행성에 불과하여 미약했다. 이 소련이 빛을 잃어가자 그 대체자로서 가장 기대치가 높았던 나라는 바로 마오쩌둥의 중국(p.54)이었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왜곡된 모습을 가졌던 소련이 몰락해 갔던 것처럼 중국 역시 그런 수순을 밣지 않겠느냐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이런 심각한 주장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13억 시장을 보유한 황금국이며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라는 인식은 상상에 불과하며 이러한 상상 속에서 기본적인 가치 판단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오점이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상속의 중국은 1930년대 소련의 또다른 판박이(p.58)일 뿐이다.

 

저자는 비판적 시각은 벨기에 학자인 '시몬 레이스'의 주장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시몬 레이스는 문화대혁명이 '세계에서 가장 총명한 인민을 바보로 타락시키는 거대한 프로젝트'라고 평가(p.62)했고,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압제가 심한 나라라는 판단(p.61)을 내린 사람이다. 저자의 생각도 이와 동일하다. 대부분의 중국인이 숭배하고 추앙하는 마오쩌둥에 대한 강력한 비판도 저자는 서슴지 않는다. 저자의 판단으로 마오쩌둥의 지상 최대의 방종의 인물이었고, 그 방종을 제약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p.84). 그는 야만적인 몽상가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개인적인 오류들을 현대의 중국인들을 보고도 못 본 체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정으로 마오쩌둥과 마오쩌둥 시대에 관한 반성이 시작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러시아에서 스탈린이나 레닌을 부정하는 것과는 차별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련이 고르바초프의 '공개적인 정책'으로 붕괴되기 시작한 것처럼 갈수록 많은 비밀과 잔혹한 기억이 풀려나올 때 그것들은 해일과 같은 역량으로 현실을 뒤덮을 것이다(p.88). 중국은 이점을 교훈으로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마오쩌둥의 독재적 권력은 외부의 제어장치도 없었고 내면의 반성도 부족했다(p.90).

 

몇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쑹훙빙의 <화폐전쟁>에 대해서도 저자는 놀라울 정도로 강도높은 비판을 한다. 저자는 쑹훙빙을 '아마추어 역사학자(p.101)'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으며, 그가 쓴 <화폐전쟁>은 '황당한 책(p.107)'이라고 조롱한다. 반면 랑셴핑은 '제대로 경제를 공부한 사람'으로 격상시킨다. 랑셴핑은 앞서 언급했던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와 함께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 <누가 중국경제를 죽이는가> 등의 저자이며 그 이외에도 최근 1~2년 사이에 그의 많은 책들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중국의 경제시스템은 '서구 자본주의'보다 더욱 잔혹한 자본주의(p.145)를 추구한다. 중국의 국민들은 정부의 권력과 시장 권력이라는 이중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정책에 희생된 개인은 보지않고 추상적인 위대함으로 모든 것을 저울질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마오쩌둥의 개인적인 매력, 두 자리 숫자의 경제 성장, 공산당의 절대 권력,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국 모델'이라는 놀라운 이론이 모든 것을 저울질하는 표준이라고 분석한다. 수천만 명의 사망과 생생한 개인 비극은 아주 짧은 언급에 그치고 있다.  - p.145

 

따라서 중국의 유일한 목적은 서구 자본주의의 패권에 도전하여 그들 이론 창조자의 개인적인 야심을 만족시키는 것일 뿐(p.147)이라고 저자는 일축한다. 중국인들의 진실한 생활과 중국 사회의 보편적인 곤경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누누히 강조한다. 중국은 정치적이나 문화적 측면에서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특수성이 왜곡되고 과정되어 특수한 경험으로 보편적 경험을 은폐하게 되면 중국 사회는 결국 위험에 빠지게 될 것(p.149)이라는 저자의 지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가져왔다. 다만 중국을 너무 무시해서도 안되겠지만 너무 경계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그들만의 독특한 특수성의 문화가 성공모델이 될지 실패모델이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되지 않을까 싶다. 중국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G2가 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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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병법경영
국내도서>경제경영
저자 : 신동준
출판 : 인간사랑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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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삼국지의 조조는 눈치빠르고 간계를 잘 부리고 교활한 인간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 <조조의 병법경영>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조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려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조조의 교활한 인간 이미지는 진정한 조조의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만의 주장은 아니고 최근의 역사 연구가들의 흐름이라고 한다.



조조는 병법에 관해서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지식을 풀어낸 책이 <손자약해>이다. 이 책은 <손자약해>에 나오는 조조의 주석을 21세기 경제전쟁 상황과 비교하여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상은 애플과 구글과 같은 IT기업의 사례에서 최근의 퍼주기식 복지위주 정책의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균부'는 모든 국가의 통제과제이다. 요즘처럼 양극화가 심한 상황에서는 이들의 주장이 더욱 가슴에 와닿을 수 박에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 차원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이든 아니면 중국식의 독특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이든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정한 시장경쟁 체제의 확립이다. 이게 확립된 연후에 동반성장 문제를 논하더라도 논해야 할 것이다. (중략) 이는 무차별 무상복지와 엄히 구별해야 한다. 원해 호강(豪强)한 자를 억눌러 백성을 고루 잘살게 만드는 '균부'와 부유한 자를 더욱 부유하게 만드는 무차별 무상복지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 p.59


애민경영을 이야기하면서 저자고 논한 대목이다.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한비자>와 <상군서>, 그리고 <관자> 등의 고전을 추천하고 있다. <상군서>의 '거강(去彊)'의 한 대목을 소개하는 문구가 인상깊다.


나라가 부유한데도 국고를 계속 채우면서 부유한 백성의 부를 덜어내는 빈치로 다스리는 나라는 강해진다. 나라가 가난한데도 국고를 계속 비우면서 부유한 백성을 더욱 부유하게 만드는 부치로 다스리는 나라는 패망한다.  - pp.62~63.


6장에서 민심경영을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애플과 구글의 사례를 들고 있다. 제품의 최종 구매자인 소비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의 유용성을 논한다. 일상적인 생활 패턴과 삶의 질을 바꾸고자 하는 최종소비자의 입장에서 그 니즈를 읽고 이를 제품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관건이다(pp.113~114).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수익은 자연스러운 부산물에 불과할 것이다.


조조를 대체로 병볍경영의 롤모델로 내세우는 내용이 많지만 9장의 소통경영 대목에서는 조조가 제대로 하지 못해 실패한 전쟁의 예를 들고 있다. 적벽대전에 이어 한중대전을 조조가 패한 이유로 그의 우유부단과 불통을 들고 있다. 주변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패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택동도 이러한 점을 지적했다고 하는데 만약 조조가 적벽대전의 패배에서 교훈을 얻어 한중대전 때 유엽 및 사마의의 건의를 받아들여 촉 땅으로 진격했다면 능히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했을 공산이 컸었다고 예상(p.172)했다. 이러한 우유부단과 자만은 국가든 기업이든 최고결정권자가 대사를 그르치게 하는 최고의 위험요소이다. 그 사례로 초한지의 항우가 범증을 믿지 못해 내치고 나서 유방과의 전쟁에서 패사한 사례를 들고 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최종결정권자의 우유부단과 자만은 대사를 그르치는 최고의 위험요소다. 아무리 득인과 용인에 성공해 천하를 호령하는 상황에 이르렀을지라도 늘 스스로 겸허하며 참모들의 건의를 귀담아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72


책에서는 민심경영(6장), 위임경영(7장), 소통경영(8장), 전략경영(12장) 등을 비롯하여 20가지의 경영전략을 논하고 있다. 그 경영이란 비단 기업의 경영만이 아니라 한 가정의 경영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마음경영에도 유용하다. 최근 몇년간 동서양의 고전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 책도 그러한 유행을 반영한 듯 보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있어 보인다. 삼국지나  고대 중국의 시대 상황과 역사에 대해 이해가 있다면 좀더 쉽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이 책을 읽은 이후에 이 책에서 인용되는 여러 중국의 고전들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좋은 독서가 될 듯 하다. 저자는 중국역사 및 고전에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저자분이 저술한 <현대중국사>를 가지고만 있고 아직 읽지를 못해서 조만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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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인지를 늑대에게서 배운 사람이 있다. 브레닌이라는 이름의 늑대는 그에게 형이요, 동생이었다. 저자는 늑대와 가족과 같이 공존하는 삶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 선과 악, 권리와 의무, 도덕과 정의, 행복과 고통,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그가 강의하는 철학은 실천학문으로서의 철학이다.


저자 마크 롤랜즈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조회해 보니 ≪동물의 역습≫이라는 책을 통해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동물의 권리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본 책을 통해서도 늑대와 11년간 동거하면서 한 가족으로서의 동물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려 11년이나 늑대와 동거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을 한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이기도 하다.

나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늑대에게서 배웠다.  - p.69

요즘 네 살짜리 우리 딸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와 '빨간 모자'라는 동화이다. 둘다 늑대가 염소나 사람을 잡아 먹고 늑대의 배를 갈라 꺼내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만큼 늑대는 인간들에게 '사악한' 존재로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근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동화책을 매일 같이 읽어주고 나면 우리 딸은 '늑대는 친구야'라는 말을 항상 한다. 어린 나이에 모든 사물에 애정을 느끼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단편적인 사례일 수도 있겠으나 그 말을 들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늑대에게서 느꼈을 것 같은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저자가 늑대를 '길들이는' 과정이라는 것이 동물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듯 하다. 늑대라는 동물의 야생성을 사람이 죽여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 말이다. 그런 비판을 한다면 나로서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다만 저자는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늑대와 진정으로 '교감'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브레닌을 노예로서가 아니라 늑대의 존재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훈련을 시켰기 때문에 적응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pp.66~67).

어찌보면 저자가 브레닌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브레닌이 저자를 길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브레닌을 훈련시키고 적응시켜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저자는 철학자다보니 책의 내용 여기저기에서 철학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저자는 '행복'에 대한 다른 철학자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많은 철학자들은 행복의 본질적 가치를 주장한다. 행복은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건 대부분 그 효용이나 역할 때문이다. (중략) 일부 철학자들은 행복만이본질적 가치를 지닌다고 여긴다. 오직 행복만이 효용이나 역할이 아닌,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p.204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섹스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답변한 것에 착안하여 사람들은 행복을 일종의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이 감정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잘 살고 못 사는 문제와 상관없이, 삶의 질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p.206)" 하지만 저자는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행복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때로는 삶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이가장가치 있기도 하다. 가장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이 될 수 있다.(p.221)" 이 행복의 대상을 브레닌으로 옮겼을 때 과연 브레닌은 행복했을까 라는 질문을 저자는 던지고 있다.

브레닌의 죽음을 앞두고 저자는 고백한다. "나는 브레닌을 형제로서 사랑했다.(p.249)" 그리고 저자는 브레닌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우리 꿈에서 다시 만나자.(p.253)" 재발한 암으로 인한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최종적으로 안락사를 결정한다. 그리고 브레닌은 죽어 갔다.

야생의 늑대를 사람과 같이 키우는 것은 동물학대가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저자도 그 부분에 대해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는 분명히 늑대 브레닌을 사랑했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 가족처럼 지냈던 브레닌을 떠나보내면서 저자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저자가 행복을 정의한 것과 같이 고통 뒤에 오는 행복이 아니었을까.

철학자와 늑대
국내도서
저자 : 마크 롤랜즈(Mark Rowlands) / 강수희역
출판 : 추수밭 201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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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철학하기
국내도서>인문
저자 : 로제 폴 드르와(Roger-Paul Droit) / 박언주역
출판 : 시공사(단행본) 201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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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처음을 시작하는 '추천의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철학'이라고 하면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공자나 맹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철학은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로부터 출발한다. 책 제목에 철학이 들어가있다고 해서 턱을 괴고 앉아서 심오한 인생철학을 논의하고자 하는 책은 아니다. 표지에 적혀있는 글처럼 이 책에서 말하는 철학은 '엉뚱'하고 '이상'하고 '웃긴' 철학이다. 내가 하나 덧붙이자면 '골때리는' 철학이다. 저자가 '들어가는 글'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심심할 때 가볍게 뒤적여볼 수 있는 책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제안한 철학적 구도의 방법은 '놀이'이다. 하지만 심심풀이 놀이를 통해서 시각의 변화를 유도하며 더 나아가 우주의 정체성, 우주의 영속성 등을 고민하게 만들고자 했다.



내 이름을 불러보라는 제안으로 시작하여 하나하나가 전부 골때리는 이야기들이다. 일단 첫 사례를 읽고 난 느낌은 약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 든다. 골방에서 내 이름을 부르다 보면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는, 내 이름은 주로 타인이 부르기 때문에 내 스스로 내 이름을 부르다보면 나 자신이 둘이 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심오한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넘어가자.


두번째 사례는 나도 많이 경험했던 사례이다. '낱말의 의미에 구멍내기'라는 제목인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를 자주 반복하다보면 그 단어의 의미가 헷갈려지기 시작한다. 책은 '연필'이라는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연필, 연필, 연필 계속 반복하다보면 왜 '연필'의 이름이 '연필'이 되었는지 생소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저자는 '낱말과 사물의 분리'라고 설명한다. 이런 놀이를 통해 사람들은 낱말과 사물을 이어주는 끈이 생각보다 너무 허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p.22).


세번째 사례도 읽다보면 뭔가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를 찾는 작업에 관한 이야기인데,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답하기 위한 작업이다. 생각해보자. '나'는 누구인가? 홍길동의 '나'는 홍길동이고, 홍길순이 말하는 '나'는 홍길순이다. 각자 1인칭 대명사로서 '나'라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 본인을 말한다. 결국 전부 다른 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건 그렇다치고, 그렇다면 1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책의 표현대로라면 10년 넘는 기간 동안 우리 몸속 세포 중에서 살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어떤 측면을 '나'라고 부를 것인가? 결국 저자의 생각은 바로 '생각'이다. 우리의 생각, 기억, 이미지, 추억, 욕망들이다. 하지만 그 생각 역시 변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너무나 허무하게도 정답은 '정확한 나는 절대 찾아낼 수 없다'이다.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행동과 사고의 경험을 통해 철학적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하지만 책을 계속 읽다보면 '뭐 이런게 다 있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그래서 어쩌자고?'라는 질문이 저절로 나온다. 제목만 읽다보면, 정말 이대로 따라하기만 한다면 엽기적이라는 소리, 변태라는 소리를 절로 들을 것 같다. 오줌을 누면서 물을 마셔 보라니? 차안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기어가는 개미를 따라가보라니? 햇살속의 먼지를 관찰하고, 과식으로 정체성을 탐험해보라니? 이 얼마나 엽기적이고 변태스러운가. 



가끔은 이러한 일탈행위를 통해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다 생각은 들지만 제목만 봐서는 정말 '아니올시다'이다. 하지만 저자의 장난스러운 제목에 따른 전체 101가지의 놀이방법을 읽다보면 '아니올시다'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는 생각은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남아있다. 그래서 저자는 친절하게도 제일 앞페이지에 이러한 생각의 정답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어쩌자는 겁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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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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