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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청부업자도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생각하고 된다면 이 책을 읽을 때 상당히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나 역시 책에서 나오는 몇가지 에피소드를 읽고 상당히 거부감을 가졌는데, 살인 청부업자도 직업이라는 가정을 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이해하게 되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살인청부업자라는 직업의 도덕윤리적, 법적 문제가 전혀 없다고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 살인청부업자를 일종의 직업으로 받아들여야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냐 하면 이 책의 주인공인 켈러라는 살인 청부업자는 기존의 잔인하고 집요한 사이코패스와 같은 살인마가 아니라 그냥 살인을 해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돈을 받고 응대해 주는 하나의 비즈니스맨과 같은 형태로 포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여타 인물과의 대화나 주변환경 묘사를 통해 켈러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여타 추리소설에서 '살인'이 이야기의 발단이자 시작이 되는 반면 이 책에서의 '살인'은 이야기 구성의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살인이 또다른 살인을 불러일으키며 과연 살인자가 누구일까 하는 긴장감으로 읽게 되는 여타 추리소설과는 달리 이 책의 살인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객들에게 요구를 받고 켈러가 다양한 방법으로 살인하는 장면을 아주 '태연하게' 묘사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죽이고자 하는 사람의 차에 몰래 잡입하여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살인하는 장면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켈러는 천천히 몸을 바로 했다. 루스벤은 열쇠를 더듬거리면서 시동을 켜지 못하고 있었다. 이자가 정말 루스벤일까?

맙소시, 정신차려. 아니면 누구겠어?

켈러는 남자의 귀에 총구를 갖다 대고 탄창을 비웠다.  - p.221


직업상의 이유로 실수를 하기도 한다. 즉 의뢰받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도 발생하는 것이다. 또는 죽이고자 하는 사람과 함께 있던 또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호텔의 다른 방에 가서 남자를 죽이고 나서 같이 있던 여자를 죽였는데 알고보니 두 사람은 죽이려고 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난감해 하는 장면은 코믹스럽기도 하며 동시에 끔찍하다.


여자는 거래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었고, 자기가 있어야 할 욕실에 남아 있지도 않았다. 멍청한 년이 그러질 못했다. 기어코 문을 열고 나와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p.196


의뢰받은 사람에게 계약금을 받고 일을 마쳤는데 잔금을 주지않고 사라져 버린 사람을 추적하여 끝까지 받아내는 집요함도 묘사하고 있다. 아무튼 모든 살인의 과정은 극도의 긴장감을 요구하는 과정이 아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켈러는 타이어 스패너를 로더하임의 명치에 꽂았다.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로더하임은 괴상을 소리를 내면서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무릎을 꿇었다. 켈러는 셔츠 앞섶을 잡고 자갈 길 위로 질질 끌어서 스바루가 두 사람을 가려주는 지점까지 갔다. 그런 다음 타이어 스패너를 머리 위 높이 들어올렸다가 로더하임의 머리에 내려쳤다.

로더하임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조용한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 뻗었다. 몇 대 더 때려서 끝낼까?  - p.257


살인장면에 대한 묘사가 매우 자연스럽고 살인자의 태도가 매우 태연스럽게 묘사되기 때문에 집중하고 결말에 다다르면 '언제 사람을 죽인거야?'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다음 문장을 보자.


그들은 뒷방으로 들어갔다. 턱살이 늘어진 사내가 문을 닫고 몸을 돌리는 사이 켈러는 사내의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지점을 손날로 쳤다. 사내의 무릎이 풀리자 켈러는 목에 철사를 감았다. 일 분 후에 그는 문밖으로 나갔고, 한 시간 후에는 북쪽으로 향하는 고속철을 타고 있었다.  - p.123


잉글먼이 몸을 내밀자 켈러는 주머니에서 가느다란 철사 올가미를 꺼내어 잉글먼의 목에 감았다. 교살은 빠르고 소리 없고 효과적이었다. 켈러는 잉글먼의 몸이 길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놓였는지 확인하고, 혹시 건드렸을지도 모르는 모든 곳에서 지문을 닦아 냈다. 그는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나갔다.  - p.38


켈러는 목 조르기로 답을 대신했다. 확실히 의식을 잃을 때까지 졸랐다. (중략) 그는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램즈게이트가 늘어져 있는 사무 의자를 창가로 밀고 가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킨 다음 창 밖으로 밀었다.  - pp.376~377


그는 배신자 뒤로 가서 그 더러운 입에 한 손을 얹고 반대쪽 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콧구멍을 막은 뒤 공기를 틀어막은 채로 천천히 꽤 높다 싶은 숫자까지 헤아렸다. 켈러가 손을 놓자 배신자의 손이 한쪽으로 툭 떨어졌다.  - p.384


직업적으로는 완벽한 처리를 추구하지만 부탁받은 지역을 차나 비행기, 또는 렌터가로 이동하면서 자연풍경을 느끼고 은퇴 후에 살만 한 곳인지를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장면은 앞서 말한대로 살인 청부업자도 하나의 직업일 수 있겠구나 하는 동정심마저 느끼게 한다. 자살을 하고 싶은 사람의 요청을 받고 그 사람을 '죽여주는' 과정은 좀 슬프기까지 하다('현장의 켈러' 편).


이 책은 단편소설집이다. 하지만 켈러라는 동일인물이 주인공이어서 그런지 단편소설 같은 느낌은 주지 않는다. 또한 이야기가 흐름을 가지고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의뢰받은 사람을 죽이고 나서 그 사람이 키우던 개(넬슨)을 가져다가 키우는 장면이 다음 소설로 이어지기도 한다.


흥미로우면서도 한편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주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두려움이 사로잡혀 읽게 되는 소설이다. 사람을 죽이면서 켈러가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살인이 가장 쉬웠어요."


살인해드립니다
국내도서
저자 : 로렌스 블록(Lawrence Block) / 이수현역
출판 : 엘릭시르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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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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