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진화의 심리학>, P.D.우스펜스키, 부글북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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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관계로 책 첫부분에서는 심리학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심리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으로서 그동안 철학, 종교, 예술, 신비주의 등의 형태로 존재했었다고 한다. 심리학은 크게 두 분야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인간 현재의 모습을 발견의 대상으로 보고 연구하는 심리학 체계로서 과학적 심리학 분야가 있고, 인간을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장래 이룰 수 있는 모습을 바탕으로 파악하는 심리학 체계가 있다. 두 번째 심리학 체계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인간의 가능한 진화(Psychology Man's Possible Evolution)라는 관점의 연구이며, 이 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P.D.우스펜스키는 187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생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 구르지예프를 만나 함게 공부했으며 이 책은 그가 생전에 했던 강연 내용을 묶은 책이다. 강연 내용을 정리한 책이기 때문에 실제 강연을 듣는 듯한 논리정연한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에 ‘지난 강연에서는’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었지만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그가 하는 강연이 빠지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이 책의 원제목인 ‘인간의 가능한 진화’라는 관점에서 심리학은 ‘인간의 가능한 진화의 원칙들과 규칙들과 사실들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될 수 있다(p.21).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과연 심리학과 진화가 무슨 관계가 있냐는 것이다. 저자는 진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전과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는 진화는 없고, 인간이 자신에게 가능한 진화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또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어야만 진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 p.23.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두면 성장하지 않은 상태로 늘 그대로 남거나 제 스스로는 성장하지 못하는‘ 내면의 어떤 자질들과 특징들이 성장하는 것(p.24)을 진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진화를 이루어가려는 인간이 ’어떤 방향‘의 ’다른 존재‘가 될 것인지를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숙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p.26)이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이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현재 갖고 있지 못하지만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능력부터 획득해야 한다(p.29).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잘 모르며 자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p.30).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인간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인간은 ‘기계’라고 정의한다. 즉, 인간은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움직임이 하나도 없으며, 외부의 충격과 영향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기계라는 것을 의미한다(p.31). 하지만 인간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뭔가를 하는 능력을 항상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있다(p.32). 인간은 이러한 특성을 이해해야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만은 것들을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바꿔놓기 시작할 것이다(p.33). 이 사실을 깨달아야만 인간은 자신이 기계이기를 거부할 수 있는 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새로운 능력을 확보하려면 반드시 그 전까지 그 사람이 자신의 내면에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한 그 자질들을 찾아내어 개발해야 한다. 많은 자질들 중에서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자질은 ‘의식(consciousness)’이다(p.39). ‘지성(intelligence)’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awareness)'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의식은 결코 언제나 똑같은 상태로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p.41). 하덕규의 노래 ’가시나무‘의 노래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 사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는 이런 사람이 되었다가, 그 다음 순간에는 또다른 사람이 되는 식으로 언제나 똑같은 것이 아니라 끝없이 변한다(p.34). 이와 마찬가지로 의식은 사람의 내면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특별한 노력을 통해서 의식을 지속적으로, 또 통제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의식의 순간은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는데 모든 일에 대해서 다 기억하지 않는 이유는 의식을 가진 순간들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자기공부(self-study)'라고 정의한 내용(이 책에서 언급한 두 번째 심리학의 정의)도 흥미롭다. 심리학은 천문학처럼 동떨어진 무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복잡한 새 기계를 연구하듯 인간이라는 기계를 연구하게 된다. 이 자기공부는 사고, 느낌, 본능 기능, 운동기능 등 4가지 기능에 대한 공부로 시작한다. 이러한 기능 이외에 인간은 쓸모없는 기능들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백일몽, 자기 자신과의 대화, 헛소리 등이다. 모두 통제불가능한 것이며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저절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왜 쓸모없는 기능이라는 건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은 크게 4가지 상태가 있다. ‘수면’, ‘깨어있는 의식’, ‘자의식’, ‘객관적 의식’ 등이다. 사람은 항상 수면상태에 있는데 수면 속에서 모든 것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깨어날 수 있는가? 먼저 나 자신이 잠든 상태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깨어날 수 있다고 한다. ‘자의식’과 ‘객관적 의식’은 상당히 고차원의 의식으로서 이 단계까지의 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강도 높은 공부가 필요하다(p.78).
저자는 심리학에 대한 세 번째의 또다른 정의로 거짓말에 대한 연구‘라고 정의하였다. 의식의 4가지 상태에 따르면 ’객관적 의식‘의 상태에서만 절대적인 진리를 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진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없지만 마치 진리를 안은 것처럼 꾸밀 수는 있는데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세를 하지만 인간은 나 자신조차도 모르는 존재이다. 그래서 심리학의 또다른 정의로 거짓말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 것이다.
인간은 '정수(essence)'와 ‘인격(personality)'의 두 가지 파트로 구분될 수 있다(p.86). 정수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며, 인격이란 사람이 태어난 뒤에 얻어지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정수가 인격을 지배해야 하는데 인격이 정수를 지배하거나, 정수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성장이 멈춘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저자의 예로는 게임에 심취하면 정수의 성장이 멈출 수 있다고 한다(p.90). 이 게임이라는 것이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 게임은 아니겠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단순한 놀이를 의미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4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를 응용하여 인간을 7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제안한 점이 인상깊다. No.1 카테고리는 운동 또는 본능센터가 지적 센터와 감정센터를 지배하는 사람이다. No.2 카테고리는 감정센터가 지적센터, 운동센터, 본능센터를 지배하는 사람이다. No.3 카테고리는 지적 센터가 감정 센터, 운동센터, 본능센터를 지배하는 사람ㄹ이다. 이 세가지 카테고리는 비슷한 수준이며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속해있는데 결국 No.1 카테고리는 육체적인 사람, No.2 카테고리는 감정적인 사람, No.3 카테고리는 지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좀더 고차원적인 인간 카테고리로 4가지를 더 언급한다. 학습을 통해 자의식을 이루고, 더 나아가 객관적인 의식을 가지고 영원한 ‘나’와 ‘자유의지’를 갖게 된 사람들의 형태이다. 이러한 일곱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종교, 예술, 과학, 철학 등 넓은 범주로 확대시켜 해석해볼 수 있다.
이 일곱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설명을 지속하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짧기 때문에 이 저자가 말한 학설이 과연 어디까지 인정받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활용가치가 있는지를 학술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간을 기계로 치부하고 인간은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단정한 것에 대해서는 일부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이 기계를 사용하려면 그 사용방법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듯이 인간도 그 스스로를 잘 알아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동의하지만 사람이란 기계와는 다른 점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후천적인 학습을 통하여 더 나은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또 일곱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인간 특성을 분류한 것에 상당히 공감이 가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인 두 개 이상 특성이 중복된 사람들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심리학 관련 도서라고 하면 자기계발과 연관지어서 설명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렇게 ‘쉬우면서도 어려운’ 심리학 책은 처음 읽어 본다. 줄간격도 상당히 넓고 약 250 페이지 밖에 되지 않아 2~3시간이면 끝낼 수 있겠다 싶은 것이 꼬박 하루를 읽고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초반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철학이나 종교, 예술 등 상당히 포괄적인 범위를 아우르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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