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박상표, 개마고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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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인류사회에서 진행된 세가지 혁명을 보통 농업혁명, 산업혁명, 디지털혁명으로 설명한다. 농업혁명은 과거 이동을 하면서 수렵, 채집생활을 했던 패러다임에서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자급자족의 패러다임으로 변환되었음을 의미한다. 가축을 기른다는 것은 농사를 도와주고 젖이나 알을 주며 마지막으로 고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가축의 생명주기가 끝나게 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급자족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부농이 생겨나고 대형 가축농장이 생겨났고 산업혁명 이후 최근까지는 축산업에도 대량생산 시스템이 도입되어 적은 공간에서 많은 상품을 얻어내기 위해 공장의 개념이 응용되고 있다.
저자는 가축을 기르는 곳이 농장인가, 공장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물론 제목에서 느낄 수 있다시피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여러가지 폐해들을 요목조목 들추어 내면서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머리말 내용으로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미루어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기계로 찍어내듯이 가축을 생산하고 있는 현대의 공장식 축산방식을 매개로 유전자조작 씨앗, 화학비료, 농약, 항생제, 성장호르몬 등을 생산하는 거대기업들이 서로 막대한 이윤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농민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내몰리지 않고, 가축들이 학대받지 않고 자라며, 소비자들이 건강에 해롭지 않은 안전한 식품을 먹기 위해서는 이러한 카르텔을 깨뜨려야 한다. - p.8
우리의 식사시간에 접하게 되는 주요 가축중에서 책에서는 돼지, 소, 닭 등 세 종류의 가축들이 어떻게 사육되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지를 먼저 분석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꽃등심은 '환상적 마블링'이라는 홍보 전략으로 지갑을 열게끔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몸집이 커지고 육질을 개량하기 위하여 곡물사료를 집중적으로 먹이고 매끼마다 항생제를 투여한다. 이 곡물사료의 주요 원료는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콩이다. 더 나아가 동물성 사료를 먹이고 있는데 소가 다른 소를 먹고 돼지나 닭, 말까지 먹이고 있다. 죽은 소를 갈아서 살아있는 소에게 먹이는 동종식육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p.31)
돼지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부분에서는 가축 학대에 대한 지적도 인상적이다. 태어나자마자 송곳니가 잘려나가며 마취도 없이 꼬리를 잘라버린다. 대략 30일이 지나면 거세를 당한다. 대략 1평에 10마리까지 몰아넣는 밀집사육 과정이 진행되고 대략 6개월이 지나면 100kg 정도가 되는데 그것으로 돼지의 인생은 끝나게 된다. 현대 공장형 양돈업에서는 그 이상 돼지를 기르는 것은 사료값, 약값, 난방비, 인건비 등을 고려할 때 경제적으로 낭비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현대 양돈장에서는 10~15년에 이르는 자연수명을 다 누리는 팔자 좋은 돼지는 씨가 마른 셈이다.
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산란계(달걀을 얻기 위해 기르는 닭)의 경우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는 태어난지 24시간 내에 목숨을 잃게 되고, 최근에는 고기용 육계도 암수 구별을 하는 추세라는데 그 이유는 수평아리가 암평아리에 비해 빨리 크기 때문에 출하시기를 일정하게 맞추고 사료효율을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양계장에는 케이지라는 밀집사육시스템을 이용하게 되는데 닭 한마리당 A4용지 1장도 채 되지않은 열악한 공간에서 사육이 된다. 바닥의 똥덩어리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가스때문에 대부분의 닭들이 호흡기 질환을 앓게 되며 시력을 잃기도 한다. 밀집되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이, 벼룩, 빈대, 진드기 등 온갖 기생충으로 인해 피부병을 일으키며 이것을 잡겠다고 살충제를 뿌리는데 당연히 살충제는 닭이나 인간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스웨덴이나 룩셈부르크 등의 나라는 케이지 사육을 금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좁은 닭장에 가두어 기르게 되면 닭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공격성을 띠게 되는데 이런 닭들이 다른 닭의 머리나 항문을 피가 날때까지 부리로 쪼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업계에서는 병아리가 태어난지 일주일 이내에 부리를 강제로 자르고 산란계의 경우 생후 20주가 지나면 다시 한번 부리를 자른다. 한꺼번에 많은 병아리의 부리를 자르다보니 심할 경우 콧구멍까지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가축의 사육방식을 통해 이윤을 얻는 기업은 따로 있다. 책에서는 다소 예전의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데 2006~2008년 미국 식품원가구조를 보면 축산물 소비자 가격에서 30~40% 가량만 생산자의 몫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가축을 대규모로 수집해 도축하고 가공하는 기업들이 가져가고 있다. 미국의 육류가공산업은 타이슨푸드, 카길, 스위프트, 스미스필드푸드 등 소수의 거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다(p.71). 비위생적인 사육과정과 도축과정을 통해 광우병, O-157, 살모넬라균 등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국 식탁에서 그 고기를 먹게 되는 인간들에게 피해가 돌아온다.
농업정책에 있어서의 문제점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장식 축산업을 부추기는 축산업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결과로 소농을 도태시키고 대형 농장을 만들려는 정책들이 입안되어 실행되고 있다.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된 이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농업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나아진 점은 전혀 없었고 현 이명박 정부에서도 여전히 주요 농업전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가축이 입는 학살의 피해 뿐만 아니라 그 결과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피해로 돌아오는데 비만, 식중독, 각종 전염병이 그 예이다. 실제로 비위생적인 도축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고 사망한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어떤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세균들이 우리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여러가지 무시무시한 지적을 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도 마지막 부분에서 공장식 축산업을 폐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지구 환경을 살리고 가축과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안이 없다. 물론 대안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먼저 농업과 축산을 하는 생산자 입장에서는 항생제, 화학비료, 농약, 유전자조작 씨악에 의존하는 농업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유기농 비즈니스의 상업화를 막아내어 자연순환농업 모델을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소비자 편에서도 패스트푸드를 끊고 외식을 줄이며 안전한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동네 슈퍼나 생협 매장에 들러 그때그때 필요한 물품을 소량으로 구매하자고 제안한다. 또한 천천히 요리하여 적게 먹는 식습관으로의 전환을 통해 환경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공장식 축산업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고 희망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대안들이 너무 현실적이지 못하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공감이 되지만 대안이 썩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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