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문예출판사] - 상처를 극복하고 마음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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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무게 약 270킬로그램이다. 학교를 그만둔지 18년이 되었고, 최근 10년 동안 밖으로 나가본 일도 없고 3층 집에서 윗층으로 올라가본 일도 없다. 밖으로 다니지를 않으니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나의 유일한 낙은 먹는 것이다. 나는 은둔자이다."
편지를 통해 이 사실을 고백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전직 대학교수였던 아서 오프는 자신의 제자이자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샬린 터너에게 편지로 대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대학을 그만두고 그는 자기의 본 모습을 숨기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만의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간다. 그러는 와중에 자기 자신은 철저하게 망가진다.
샬린 터너는 대학 교수였던 아서 오프를 만나 애정을 느꼈지만 곧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는 바람에 편지로 마음을 털어놓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녀 역시 알콜 중독이며 결혼을 하여 아이까지 낳았다는 자신의 본 모습은 숨기고 꾸며진 모습으로 치장한다.
아서 오프와 샬린 터너 사이에 꾸준히 편지가 오고갔지만 그들 스스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결국 은둔자의 길로, 알콜 중독자의 길로 더 깊게 빠져들고 말았다. 하지만 샬린 터너가 아서 오프에게 부탁하고 아서 오프는 자신의 철저한 은둔자 생활을 고백하게 만드는 상황이 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거기에 청소전문업체의 파견직원인 욜란다와의 대화를 통해 생활에는 더욱 활기가 더해간다. 예기치 못했던 임신을 한 욜란다를 위로해 주는 과정에서 그는 마음의 문을 점점 열어간다. 샬린 터너의 아들 켈 켈러는 매일 술에 쩔어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무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엄마가 이야기한 아서 오프와 편지를 주고 받고 소통해 가는 과정에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내 삶을 통틀어 나처럼 외로워 보이는 사람을 딱 하나 만났는데, 그게 바로 샬린 터너였다. 그녀를 만난 순간 나는 생각했다. 당신도? 샬린의 눈빛에서 그녀 역시 외로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 샬린은 나보다 더 외로워했다. 난 그걸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 p.358
모든 소설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이 소설에 나오는 4명의 주인공들은 각자 상처를 갖고 있으며 외부 사람들과의 소통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아픔들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숨기고 싶은 자기 사생활이 욜란다에게 노출되는 상황에 등장하는 아서 오프의 엉뚱한 모습들이 흥미롭다. 특히 그 사생활이란 먹는 것을 즐기는 모습이다.
위로가 필요해서 나를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 코코넛과 마차다미아와 화이트초콜릿으로 만든 쿠키, 땅콩 엠앤엠 한 그릇, 씨앗과 곡물과 짭짤한 소금을 듬뿍 입힌 베이글 몇 개, 버터와 크림치즈를 듬뿍 바르고 빨간 즙이 흐르는 토마토 한 조각을 얹은 베이글 한 개, 전지유 한 주전자와 그 옆에 놓인 키 큰 유리잔 하나, 오레오 쿠키가 덮힌 초콜릿 케이크, 햄버거 세 개와 감자 샐러드와 7번가에 있는 식당에서 주문한 크림 시금치. 그 시금치를 스토브 위에서 데우고 한가운데 크림 치즈를 약간 얹었다. 깨끗한 녹색 바다 위에 흰색. - p.53
나를 위한 만찬이라고는 했지만 그가 먹는 음식 이야기가 가끔 등장할 때마다 한편으로 씁쓸한 느낌과 함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단절한 대신에 그가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각자 상처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 상처를 극복하고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여는 이야기. 인생에서 느껴지는 무게를 나눠가지려는 노력을 통해 내 상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상처까지 치유시키는 능력자들의 이야기. 인생의 핵심을 피하고 중요하지 않은 무언가에 심취해 있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마침내 극적으로 샬린이 서로를 선물로 주었다는 것을 깨닫는 켈러. 이 책 속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통해서 점점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나이에 내 짐을 덜 수 있겠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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