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메타과학>, 장회익, 현암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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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메타과학>이라는 이 특이한 제목의 책은 90년에 나왔던 초판을 개정한 신간이다. 몇달 전쯤에 알라딘 중고서점 종로점에 갔을 때 손이 잘 닿지도 않는 책꽂이 제일 윗칸에 허름한 초판이 있어서 꺼내보았다가 좀 어렵겠다 싶어서 다시 꽂아두고 나왔던 책인데 이번에 개정판이 나와서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 문과전공인 나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책이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주어져서니 감사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한달이 넘게 읽은 이 책의 리뷰를 뒤늦게 정리하려니 책의 앞부분 내용이 다시 가물가물해 질 정도로 난이도가 있는 책이었다.
시작부터 역시나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대략 책 앞부분의 서설과 1장, 2장까지는 그나마 쉽게 읽혔다. 연구방법론에 관한 이야기들이었고 그 연구의 대상은 과학이었다.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과정은 대체로 탐색과정과 수용과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탐색과정은 새로운 지식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말하며, 수용과정은 찾아낸 지식을 받아들일 것인가 배격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과정을 말한다(p.29). 저자는 과학적 지식을 만들어가는 탐색과정의 특징을 세가지로 이야기(p.31)하고 있다. 첫째는 과학적 지식의 추구는 기존의 지식에 대한 의식적 반성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더 나은 지식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한 사람이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발견하고 혁신에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둘째는 몇가지 정성적인 방법에만 의존했던 연구방식을 타파하고 계량적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지식의 정밀화를 꽤하는데 있다. 셋째로는 반드시 지식의 실증적 검토를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실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지식은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지식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넷째로,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강력한 방법 중의 하나는 여러 단편적인 지식들을 하나의 합리적 체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추구된 과학적 지식을 올바른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 수용의 문제와 결부된다. 하나의 지식이 과학적 지식으로 수용되려면, 이것이 자연현상과 연결지을 수 있는 명확한 의미를 지녀야 하며, 현실과 부합되는 참된 내용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가지 요건의 만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 중에서 인간이 아무리 고등한 동물이고 많은 과학적 이론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자연법칙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원리들은 그 진리성 여부를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통속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과학원칙을 깨는 하나의 보편 원리 또는 이론 체계를 수용하는 과정에서는 엄청난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종래에 신봉되던 하나의 이론 체계에 대항하여 새로운 이론 체계가 등장하는 과학의 혁명기에 이르러 이러한 문제는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며, 이런 의미에서 고전역학 체계의 불완전성이 드러나고 새로운 상대성이론, 양자이론이 등장한 20세기 전반기에 이 문제들이 심각하게 논의되었음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다. - p.34
이 대목에서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에 대한 해설이 유용한 사실을 전달해 준다. 토마스 쿤은 과학 활동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패러다임이라고 했다. 즉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의 사물 인식 및 연구 활동의 바탕이 될 가치이념과 관념 체계라는 뜻과 함께 연구 및 교육활동에 부수되는 유무형의 각종 도구, 수련과정, 수련 내용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p.39).
쿤에 따르면 과학에서의 한 업적이 하나의 새 패러다임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가지 여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즉 다른 경쟁적인 업적들에 비해 충분히 뛰어난 것이어야 하며, 많은 미해결의 문제들을 내포하여 이와 관련된 연구활동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에서의 문제는 과학의 연구활동은 하나의 패러다임에만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쿤의 패러다임의 관점에 따르면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가지 변칙사례들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은 위기를 맞이하며 여기에 대항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된다(p.40)고 한다. 따라서 쿤은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속한다는 것은 사물을 보는 기본적인 관점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두 개의 패러다임을 동일한 평면 위에 올려놓고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p.40)고 주장한다. 즉 두개 또는 그 이상의 패러다임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옳은' 패러다임을 찾아내는 규범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쿤이 이렇게 주장했다고 하는 것은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20여 년 전 대학 시절에 과제를 하면서 도서관에서 잠시 빌려 읽어보았을 뿐 그 내용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쿤의 도서를 온라인 주문했는데 조만간 읽어볼 참이다.) 저자는 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소 비판의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즉 저자는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를 어떻게 하면 패러다임에 예속되지 않고 더 보편적인 방법론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지적을 하고 있다. 어찌보면 우리가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역시 하나의 패러다임이 예속되고 있다는 것은 아니겠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는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과 관련지어서 과학적 연구방법의 미래 모습을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있다.
오늘날 비과학적 사고였다고 생각되는 이른바 전과학적(前科學的) 지식 내용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지식 패턴을 동일한 평면 위에서 고찰하고, 이 가운데서 패러다임에 무관한 본질적 요소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인간 사고의 기본적 구조를 밝혀내는 작업이 이루어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당면한 그리고 성취해내야 할 가장 큰 학문적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p.44
한편으로는 노학자의 이 진솔한 제안과 기대가 과다망상은 아닐지 의문이 든다. 과연 사람의 두뇌로,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식으로 이러한 판단이 가능하겠느냐는 점이다.
지식에 대한 연구는 생물학자를 비롯한 과학자 뿐만 아니라 고대의 철학자들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 책의 2장에서는 진화학자의 관점에서 지식의 진화과정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진화이론으로 지식을 설명하게 되면 토마스 쿤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즉 패러다임의 선택 상황을, 두개의 이론이 양립하다가 결국 어느 시기에 선택 압력에 의해 우수한 이론이 지배적 위치를 점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p.53). 진화이론으로 지식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지식이, 다시 말해 학문이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학문의 전문화 경향은 이해 증진보다 지식 축적이 역점을 두는 경향(p.53)인데, 지식의 축적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지만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과학 자체의 발전 가능성을 축소시킨다는 점이고, 둘째는 학문간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이미 조성된 불균형 상태를 더욱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학문의 영역도 지나치게 '밥그릇 싸움'에 몰두해 있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현재 지나치게 전문화의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선택압력을 되도록 보편화의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학문 자체의 장기적이고 균형잡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p.54
따라서 학문의 대상 자체가 매우 복잡한 다차원적 구조를 지니는 것이어서 이를 모두 담아낼 마땅한 그릇을 마련하기가 무척 어렵다(p.58)는 가정을 가지고 개별 학문분야만을 담아낼 평면적인 그릇만을 만들어내는 연구가 아니라 통합학문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 실제 지구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지도'가 아니라 '지구의'와 같은 연구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3차원의 지구를 2차원의 지도로 구현하게 되면 왜곡현상이 발생하는 것처럼 3차원의 입체적인 학문을 2차원의 평면위에 놓고자 하는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이와같은 학문세분화와 전문화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앎'에 대한 기본적인 성격이 어떠한지에 대한 설명을 위해 류강이라는 학자가 최근 출간한 저서 <고지도의 비밀>에 나오는 사례를 전한다. 이 책에 따르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보다 74년이나 앞선 1418년 중국에서 그러진 세계지도 '천하제번식공도'에 이미 지구가 둥근 것을 전제로 세계 각 지역들이 정확히 그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의 사실여부를 떠나서 이보다 콜럼버스의 발견을 더 중시하는 이유는 많은 경우 인정을 받고 세상을 놀라게 할 업적은 이미 시기적으로 보아 뒤늦은 성과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천하제번식공도'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지적 여건이 이를 인지해 재생산해 낼 상황에 이르지 못해 단종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p.62)이다. 따라서 획기적인 지적 도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수한 몇몇 천재가 아니라 오히려 전체적인 지적 성숙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다. 다양한 사고의 물줄기를 열어놓고 서로 상호작용하도록 허용하는 연구방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 학문의 틀이 갇힌 사고의 유형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관점에서 즉 메타적 관점에서 서로의 지식을 소통하고 연결하려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p.63)는 점을 주장히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의 지적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었다. 또한 획기적인 지적도약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확인할 수 있다.
3장에서는 과학의 논리구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양태와 실태에 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양태(樣態, modes of existence)란 연구대상의 보편적 존재 양상을 말하며, 실태(實態, realities of existence)란 그것의 현실적 존재상황을 의미한다. 양태를 추구하는 과학으로는 물리학, 화학 등 보편적 존재양상에 관심을 갖는 학문의 예를 들 수 있으며, 실태를 추구하는 과학으로는 천문학이나 지구과학 등 구체적인 존재상황에 관심을 갖는 학문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양태라는 것은 자연현상의 단편적이고 독립적인 개별 명제의 단순한 집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 상호 간에 존재하는 논리적 연관성에 의해 하나의 정합적(整合的)인 이론 체계를 형성한다(p.72). 그러기 위해서는 합리성의 요건과 사실성의 요건이 부합되어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실험적 검증에 의존한다. 하지만 그 실험이라는 연구방법은 몇가지 단점을 내포한다(p.76). 첫째는 실험 자체가 이론의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며, 둘째는 실험적 검증에 합격할 수 있는 다수의 상이한 이론체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실험적 검증이란 본질적으로 귀납적 논증으로서 모든 가능성에 대해 검증하지 않는 이상 부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칼 포퍼는, 의미있는 과학이론이라면 실험적 확증은 가능하지 않더라도 반증을 가능해야 한다는 재미있는 주장을 한다. 아무튼 이러한 실험을 통해 검증될 수 밖에 없는 양태 이론들은 한마디로 틀린 이론을 틀린 것으로 판단하기는 쉬우나 바른 이론을 바른 것으로 판단한 논리적으로 완벽한 방법은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점(p.77)을 지적한다. 한편 우리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되는 원초적 자료(raw data) 자체를 말하는 실태의 측면에서도 불충분한 제약조건이 있을 수 있다. 먼저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료들이 모두 의미있는 정보는 아니라는 점이며, 과학적 설명이나 예측을 위해 사용되는 이론 체계들은 원초적 감각자료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정련된 개념에 관한 정보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온도계를 통해 몇도인지를 측정하는 그 기술 역시 열평형이나 수은 열팽창법칙 등 기존의 자연법칙들을 전재로 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양태와 실태의 측면에서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어떤 중요한 새로운 국면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우, 우리는 이를 '발견'이라고 부른다(p.80). 플라톤의 딜레마에 따르면 사람은 새로운 발견이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만 플라톤의 이 논의를 통해 우리는 발견을 '이미 아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발견'과 '아직 모르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발견'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과학혁명을 통해 등장한 또다른 논리에 대해 논리적으로 대립중인 대등한 두 체계에 대해 상대적 우월성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저자는 대립된 두 체계를 선택하는데 이들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조화로운 양태와 실태를 보여주느냐는 점이 고찰의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한다(p.83)고 조언하고 있다.
3장까지는 저자가 주장하려는 내용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4장부터는 참 난해한 주장들이 계속되었다. 어찌보면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내가 무식해서 그렇겠지 라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4장은 과학의 이론구조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진술적 관점과 구조적 관점에 그동안 득세하였지만 과학이론의 구조 및 성격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의미기반'의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7장부터는 생명과 인간이라는 주제의 에세이들이 제공된다. 역시 난해하기는 하지만 1부보다는 쉽게 읽히는 편이다. 과학을 하는 방법에 관한 과학이라는 의미로 메타과학을 제시하고 있지만 좀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은 '과학철학'이 아닐까 싶다. 상당히 어려운 책을 오랜 기간동안 읽게 되었는데 좀더 지적수준이 올라가 큰 어려움 없이 다시 읽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과학이론은 찾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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