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화이트 아웃, 와카스키 레쓰, 오후세시] -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이야기
2011년 일본 동북부 지방에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해 후쿠시마 원전의 전원이 멈추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재앙이 시작되었다. 이 책은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의 대응방식에 대해 소설의 형태로 '흥미진진'하게 지적하고 있다. 작가는 실제 일본의 현직 고위 관료였으며 보복당할 것을 우려해 '와카스미 레쓰'라는 익명으로 폭로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일본의 상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지만 '현실'과 '음모론'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다. 하지만 저자가 현직 관료였다는 점에서 그의 말을 경청할 수 밖에 없었다. 2011년 이후 두번의 선거 이후에 일본 정부는 원전 재가동의 이슈를 제기하게 된다. 그 와중에 원전 마피아는 다시 득세하고 국민을 그저 세금을 갖다 바치는 노예로 인식하고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원전에 대해서는 좀더 깊은 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시중에도 원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책들이 나와있어 이를 통해 지식을 보완하기로 하고 일단 책에서 주장하는 일본 내의 상황에 주목하기로 했다. 특히 원전을 재가동하기 위한 일본 내부의 암투에 대해 저자는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원전 마피아의 행태에 대해 과감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대중은 항상 '자신보다 잘난 놈'을 미워한다. 또한 대중은 전력 회사가 경쟁을 하지 않아 경영이 합리적이지 않고, 경쟁을 시키면 전기요금이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찌되었든 전력업계에 경쟁원리를 도입시킨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정부가 전력 시스템의 경쟁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하도록 결정하여 앞으로는 경쟁이 발생할 것이라고 대중이 믿도록 만들면 된다. - p.80
정말 무시무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최소한 그런 끔찍한 사고가 났으면 사고 경위를 명확히 밝히고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일이 급선무임에도 불구하고 전력 시스템의 개혁이라는 과제를 그저 원전 재가동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행태가 국민입장에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전력 시스템을 개혁하겠다고 대중에게 선언하고 경쟁이 발생한다고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면 대중의 불만은 가라앉고 원전 재가동의 장애물을 넘을 수 있다. - p.81
소설 속에서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사람 중에 니자키현 지사인 이즈타 기요히코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편집자 서문에 의하면 이즈미다 니이가타현 지사의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는 일본전력연맹 상무이사인 고지마 이와오를 비롯하여 원전 마피아들은 어떻게든 이즈타 지사를 함정에 빠트려 끌어내리고 원전 재가동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원전 마피아의 재가동 노력에 제동을 거는 또 하나의 인물로 다마가와 교코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본의 아니게 방사능 노출 소를 판매한 것으로 언론에 소개되어 결국 자살하게 된다. 그 사건의 충격으로 그녀는 원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원자력규제청 총무과장보좌인 니시오카 스스무를 미끼로 하여 원전 재가동 저지라는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언론에 원전의 피해 상황을 공개하도록 유도한다. (논외로, 우리나라에서 카카오톡을 많이 쓰듯 일본에서는 라인을 많이 쓴다고 들었는데 다마가와와 니시오카가 라인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부분이 나와 네이버 라인이 진짜 일본에서는 많이 유명하구나 싶었다. - p.134)
몇달 전 일본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이 쓴 ≪새로운 약진의 시대를 지향하며≫를 읽었다. 일본에서 공산당은 원전 폐기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세력중의 하나인데 원전 마피아의 입장에서는 공산당을 그저 과격파의 일종으로 설명하는 부분(pp.165~166)이 이 책에서 여러 군데 등장한다. 많은 국민들이 공산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과격파'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탈원전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촬영하여 그들의 신상을 비롯하여 뒷조사를 하고 탐문하는 작업도 사실 좀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아울러 저자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질타하고 있다. 언론 입장에서는 전력회사가 중요한 광고주였기 때문에 일본전력연맹 입장에서는 원전이나 전력회사에 비판적인 언론이 있는지 확인하여 문제가 있으면 압력을 행사(p.197)할 수 있었다.
세상은 언론을 사회의 목탁으로서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직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정의 실현보다 타사를 앞지르거나 광고를 많이 받아 이익을 창출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 p.193
전력회사에서 과거에 정규사원으로 검침이나 수금 업무를 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별동대로 운영하여 문제가 있는 기사가 보도되면 전화나 인터넷으로 시청자 의견란에 반박 의견을 보내는 일을 시킨다고 한다. 이들은 SNS를 이용하는 인터넷 공작원으로 활약하기도 한다(p.200). 원전 마피아는 아픈 기억은 빨리 잊고 싶어하는 국민들의 심리를 이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는 면을 볼 수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괴로웠던 경험과 공프는 빨리 잊고 싶고 빨리 과거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일본 국민은 대부분 이제 재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현실로 직시하지 못한다. - p.200
이 책에서 원전 폐기의 당위성으로 다른 대체에너지보다 원전을 통한 에너지 공급이 저렴하다는 인식이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다. 즉 원전의 전기생산 효율성이 높다는 것은 방사성 폐끼물의 처분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점은 다른 자료들을 통해 검토해 보아야겠지만 상당히 근거가 있는 말이라고 판단된다.
원자력 가격에는 폐로 비용이나 사고 대응에 필요한 비용, 방사성 폐끼물의 처분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이 비용은 먼 훗날에 발생할 것이다. 미래에 비용이 아무리 발생한다 해도 이를 현재 가치로 되돌리면 그리 큰 차이가 없다. - p.78
이 책은 원전 폐기의 필요성에 관한 지식부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의 대응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부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인지 의문이 들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정말 원전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아직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정말 안정성에 대한 검사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 대체에너지를 포함하여 전기 생산에 대한 안전한 방법들이 강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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