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한계>, 마이클 샌델, 멜론,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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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대형 서점의 인위적(?)인 베스트셀러 선정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로 널리 알려지면서 읽어볼까 하는 호기심도 발동했지만 남들 다 읽는 책은 나중에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미뤄두었었다.
<정의의 한계>를 펴 보았다. 두꺼운 편에 속하는 이 책의 두께는 큰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본문이 나오기 전까지 등장하는 번역자의 해제와 재판 서문을 읽으면서 이미 기가 죽어버렸다.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는 둘째치고 이 책을 완독조차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센델이 이야기하는 기본 소재는 ‘자유주의’이다. 좀더 범위를 좁히면 의무론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 비판의 구체적인 표적은 롤스의 <정의론>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이다. 롤스는 정의론을 통해 공리주의 공공철학에 대해 반발했다. 현대 공리주의의 중심 문제는 사회 선택 이론이며, 생산의 극대화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공리주의는 생산성의 극대화가 국가의 부를 키우고 그 성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하지만 이 가정에는 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첫째, 무한성장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과 둘째, 부의 증가가 곧바로 성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해서 롤스는 ‘원초적 입장’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p.120부터 설명되는 이상적인 가족 상황의 사례가 흥미롭다. 정의의 여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정의의 여건이 미미하게 나타나는 상황으로 공정한 내 몫을 요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너그러움이 퍼져있어서 어떤 문제도 제기되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상황은 정의의 반대인 부정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러한 이상적인 가족의 상황에서는 소유와 공평의 문제가 전체 맥락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목한 가족이 이견으로 싸우게 되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상황으로 변화한다면 정의의 여건이 더욱 커져갈 것이며, 이전의 애정과 자발성을 시들고 공정성과 권리를 강조하는 상황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샌델은 이러한 상황에서의 정의와 선의 합치 문제를 논의하면서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 정의와 선의 합치는 자아의 개인과 집단의 삶 속에서 표출된 도덕적 가치들의 조화를 필요로 한다. 이 조화는 타인의 인정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 정의로움과 옳음의 경계에서 필요로 한 것은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관의 확립이다. 그 정체성은 바로 내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체성이다. 하지만 샌델이 비판했던 의무론적 자유주의에서는 초월적 주체를 상정하여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보다 도덕적인 강제력을 강조했다. 법적인 토대나 권리를 중시하다보니 선택하는 주체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샌델의 철학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바로 이점이다. 개인의 선택은 인간의 정치적인 이상인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기 위한 기본전제라는 점이다. 바로 그 점에서 샌델은 정의의 한계(limits)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이 책을 선물한 것이다. 즉 선택을 해야만 하는 주체는 현실의 땅을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주체가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 안에서의 정의로움을 규제받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샌델은 이러한 철학적 지향점을 정치 철학으로 확대시킨다. 정치는 조직구성원들의 선택에 의해서 좌우되며 그래서 올바른 정치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상당한 철학적 기본지식을 요구한다. 즉 칸트, 밀, 로크 등 철학자들의 주요 저서들과 논문들을 통해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또한 각 학자들의 저서에서 인용된 부분 역시 난해하기 짝이 없다. 좀더 면밀한 사고와 이해가 필요한 대목이다.
본문을 읽기에 앞서 일단 해제를 읽게 되면 이 책에서 센델이 주장하고자 했던 바를 간략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p.14에 따르면 최근 우리 사회에 정의가 화두가 된 이유가 ‘경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성장은 경쟁을 촉매제로 삼으로 경쟁을 부추긴다. 경쟁에 거세지면서 패자가 늘어나게 되었고 승부에 승복할 수 없는 부정과 불의가 판을 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제도의 정의로움을 열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 내용의 전부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에 100%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의 ‘정의’라는 요즘의 화두,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개인의 '자율'과 '자유의지', '선택', '도덕', 그리고 '올바른 정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계기를 제공하였다. 최근에 출간된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샌델의 비판대상이었던 존 롤스의 <정의론>으로 관심의 영역을 넓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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