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 만들어진 낙원, 레이철 콘, 까멜레옹] -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의 복제인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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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톤의 커버 이미지가 상당히 몽환적이다. 물에 잠겨있는 듯한 이미지가 그로테스크하다. 아마도 책 내용에서 복제인간으로 등장하는 클론의 탄생을 그려놓은 듯 하다. 인간에게서 영혼을 빼낸 존재를 '클론'이라고 하고, 이 책에서는 클론의 베타버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름을 엘리지아. 엘리지아는 클론의 판매처인 부티크에서 어느 귀부인에게 판매되고 그 가족들을 위하 봉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책의 첫 몇페이지를 읽으면 대략 전체 소설의 상황은 그려진다.
전 세계를 폐허로 만든 '물의 전쟁' 이후 부유한 권력자들은 '드메인'이라는 낙원을 만들었다. 공기는 언제나 고급 산소로 채워지며, 자줏빛 바다에서는 잔잔한 파도가 아름답게 물결친다. 그리고 순종적이고 아름다운 클론들이 시중을 든다. 시험적으로 출시된 10대 클론 엘리지아는 클론들 중에서도 빼어난 외모와 귀여운 행동으로 사랑을 독차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지아는 환영을 본다. 바로 자신의 모체인 죽은 소녀가 사랑했던 남자.
책 뒷표지에 나오는 문구이다. 클론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감각들은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몇몇 클론들은 원인 모를 오류로 인해 이런 감각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를 책에서는 디펙트라고 부른다. 엘리지아는 다른 클론이 갖지 못한 미각을 가지고 있으며, 또 시조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엘리지아와 같은 또다른 클론인 잰스는 성욕을 느낄 수 있어 또다른 클론과 성관계를 하기도 한다. 클론들은 이를 모두 숨기고 인간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반란이나 폭동을 준비하는 디펙트들도 존재하며 책의 중반 이후로 넘어갈수록 긴장 구도가 드러난다.
드메인의 인간들이 번성하는 이유는 이들의 일회용 문화 때문이다. 클론을 갈아치우면 그만이다. 이들은 물건이 사라졌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그 물건이 물질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가치를 지니지 않는 이상. - p.207
인간들의 세상에서 클론이 갖는 '위상'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문장이 아닐까 한다. 엘리지아의 절친 클론 잰스가 원인 모를 죽음을 맞이한 이후 엘리지아는 고통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인간세상에 도전장을 내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때가 오면, 이 분노와 억울함이 또다시 나를 덮치면 절대 기절하지 않겠다고, 나는 싸울 것이다.(p.210)"
상당히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는 SF소설이지만 사람에게서 영혼을 빼내 클론으로 만든다는 이야기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찾기 어렵다. 사실 과학적 근거가 없으면 제대로 된 SF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미래에는 이럴 것이다'라는 상상에 근거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SF소설로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 속에서 결말을 실마리를 풀어나가면서 긴강장관계를 그리는 여러 장면들이 흥미롭게 진행된다는 점은 인정하고 싶다. 예를 들어 엘리지아가 사랑의 감정을 키워왔던 타힐이 실제로는 클론이었다는 점, 엘리지아 자신이 최초의 10대 베타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이전에도 많은 10대 베타들이 있었고 반항기를 넘지 못하고 죽었다는 점 등은 소설의 중반 이후 상당히 반전의 효과를 가져왔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이게 끝이야?'라는 허무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4부작의 첫작품이라고 하며 또 영화제작도 준비중이라니 이왕 본 소설이 재밌는 영화로 재구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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