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이충걸, 예담] - 엄마와 함께 떠나는 인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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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나의 투정꾼,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해 면류관을 쓰지 않은 나의 엄마에게"
책 표지 제목 옆에 인쇄된 문장이다. 이 문장 속에서 내 엄마의 모습이 발견한다. 나의 엄마는 그 누구의 엄마보다도 더 아들인 나를 사랑했다. 소위 말하는 '과잉보호'에 가깝게 나를 애지중지 키우셨다. 그건 누구보다도 더 그 사랑을 받은 내가 잘 안다. 엄마는 나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존재다. 자녀를 키우면서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베풀려고 하지만 나의 엄마가 나에게 한 사랑만큼 자식에게 베풀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나는 축복받은 존재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엄마는 내가 예상했던 그런 엄마의 모습은 아니었다. 못다한 효도로 인해 생각만 하면 가슴이 콕콕 쑤시는 존재가 아니라 일상을 같이 숨쉬고 살아가는 친구같은 엄마의 모습이다. 또 그런 엄마와의 일상생활 경험들을 공유한 책이다. 나는 읽지 못했던, 2002년에 출간된 저자의 전작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가 나온지 11년 만에 그가 다시 쓴 엄마의 모습이란다. 문장은 상당히 '꾸밈'이 많지만 거짓된 '꾸밈'이 없이 아름답다. 저자와 엄마의 대화를 통해 때론 웃기도 하고 마음의 울림을 주기도 한다. 이 책에서 엄마의 캐릭터는 자식을 위해 지극정성인 희생양이 아니라 이슬비와 같이 오는 듯 마는 듯 조금씩 스며드는 사랑의 화신이다. 그래서 더 희생양과 같은,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더 사실 것 같은 나의 엄마와 비교되었다.
때로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엄마와 스테이크를 먹는다. 또는 엄마와 같이 옛날 사진을 보며 가족들의 어린 시절과 그때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털게를 삶아서 술도 곁들여 엄마와 같이 먹기도 한다. 그 소소한 추억들이 알알이 쌓여 책 한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엄마와의 일상적인 추억을 늘어놓았지만 문장들이 아름답다. 엄마와의 이야기가 여전히 전개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중간의 쉼표와도 같은 책. 저자는 '엄마가 조금씩 사라진다'고 독백한다.
메모지에 글을 쓰다가 텅 빈 방에서 눈물 흘리던 엄마. 젤리처럼 주저앉아 과거 어딘가로 헛된 구조요청을 하던 엄마. 하지만 더 이상 가지고 싶은 것도, 화해하지 못한 관계도, 이루지 못한 희망도 없다던 엄마.
"엄마. 엄마는 천사지? 근데 옛날엔 날아다녔는데, 지금은 뚱뚱해져서 못 나는 거지? 내 말이 맞지?" - pp.98~99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하나둘 아이가 생겨나면서 점점 내 삶의 관심에서 엄마는 멀어져감을 느낀다. 엄마의 소중한 삶을 지켜드리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이야 말로 자식으로서 해야 할 책무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삶 가운데 지금 소중한 건 무엇일까? 있다 해도 그걸 즐길 수 있을까? 엄마는 왜 조금만 힘을 주어도 휴지처럼 찢길 것 같을까? 엄마가 생수병을 들고 나하고 오래 걸어 다닐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피로를 모르던 육체를 소모시켰으니 신체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러나 엄마가 받아야 할 대가를 빼앗은 건 세월이 아니라 나였다. - p.134
'엄마'를 주제로 떠난 인생의 끝을 향한 여행. 그 여행에는 희생과 사랑이 있고, 미움과 용서가 있고, 만남과 이별이 있다. 또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여유로움도 있고, 철들지 않은 아이같은 장난스러움이 있다. 인생은 선물이고, 엄마는 은혜가 아닐까.
삶 그대로를 받아들이건 변화를 꿈꾸건, 우주를 아우르는 제1의 법칙은 모든 것이 항상 똑같이 머무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진실은 타협될 수 없고, 결국 우리는 힘든 작별을 하며 일생을 보낼 것이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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