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르노 그륀, 창해,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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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끝에 나온 저술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평화라고 하면 국가적인 평화 또는 세계적인 평화를 거창하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러한 광범위한 평화는 결국 한 가정의 교육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한다. 부모의 요구보다 아이의 요구가 우선되는 관계를 통해 결국 평화의 싹은 부모의 사랑이 틔운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간에는 공감이라는 인간 고유의 본능에 있다.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공감이야말로 인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p.84). 그러나 대부분의 어른들은 젊은이들과 공감하려 하지 않고 주장하고 속박하려고 한다.
인간 모두의 고유 본능이라고 하는 공감과 관련하여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의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을 서로 묶어주는 것, 말하자면 살인에 대항하는 제동장치로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이른바 공감의 기능이 어떤 상황에서는 왜 작동하지 않는가? - p.20
저자는 이러한 공감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폭력과 살인에 집중한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공감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 선한 인간의 고유성을 버리고 타인을 죽이는 지경까지 가게 된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이 필요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는 인터뷰 내용(p.101)은 정말 끔찍하다. 이 인터뷰 대상자는 어머니로부터 어린시절 학대를 받았기 때문에 어머니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환자였다. 어머니로부터의 학대라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면서도 고통을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려는 욕구가 드러났다. 이러한 분열된 자아가 지속되면서 살인 행각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무관심과 멸시, 몰이해의 고통은 아이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며 정신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강구한다. 결국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자신의 삶이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아이에게 권력은 생명의 원동력으로 인식되고 더 나아가 그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위대해지고자 하는 '과대망상'을 품게 된다(p.115). 이것이 파괴와 폭력을 동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의 충동을 느끼며 자란 아이들은 부모가 부여한 자신의 이미지를 실제 자신의 이미지로 착각하고 부모의 욕구에 부응하도록 노력한다. 저자는 이러한 노력은 위장이라고 판단한다. 이 위장이라는 현상이 정치사회로 넘어가면서 심각한 오해를 낳게 된다. 즉 위장에 능한 선동 정치인들은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목표를 내거는 능력을 겸비하는 경우가 많고 여기에 현혹되어 선거에서 한표를 던져주게 되는 것이다.
가정교육에서 근원을 찾은 '비평화'의 문제점을 국제사회로까지 확대시키며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밝힌다. 공감하지 않고 외면하는 현상은 서구사회에서 전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원인이며 결국 전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이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전쟁은 막을 수 있고 폭력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책의 구성은 상당히 흥미롭다. 책의 제목에서 느낄 수 있다시피 평화의 출발은 '총구'로 대표되는 폭력과 파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내용이 책의 서두에 등장하면서 이 논리의 증거를 가정교육에서 찾았으며 마지막으로 다시 이러한 주장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논리는 국가간의 관계라는 것이 항상 긍정적이고 상호협조적인 관계가 되기는 힘들다는 점을 간과한 듯 하다. 결국 국제사회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주도하는 한개의 사회라고도 볼 수 있지만 국가와 민족이 개입되면서 상대적인 이익을 찾게 되고 이 과정에서 평화로움이 깨질 수 밖에 없는, 저자가 문제시하였던 폭력이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결국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와해되기 전까지는 이 땅에 전쟁이라는 행위가 없어질 것인가 라는 점의 의문이 든다. 국가와 민족을 따지기 전에 사람은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소심한' 생각으로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도덕적인 호소와 정치적 지지만으로는 이 세상의 폭력과 테러를 막을 수 없다. 오로지 다른 사람과 공감함으로써, 즉 멸시와 압박과 폭력에 시달리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때에만 가증스런 독재자의 등장을 막고 그들이 벌이는 전쟁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공감 능력은 자신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맞닥뜨릴 때 자라난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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