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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질문, 과학적 대답
국내도서>자연과 과학
저자 : 김희준
출판 : 생각의힘 201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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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에 대해 과학자는 어떤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철학의 세계가 과학적 관점으로 접목되고 과학적 시각으로 철학의 세계를 보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략적인 우주의 나이는 137억살. 137억년 전 빅뱅을 통해 만들어진 우주에 물질이 만들어나고 생명체가 진화해가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학적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노자와 같은 동양의 철학자나 탈레스와 같은 서양의 철학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논의해 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 우주의 크기에 대한 설명으로 은하수를 언급한다.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하는 윤극영 작곡의 동요에서도 등장하는 은하수에는 3천 억 개 정도의 별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은하수까지의 거리는 어떻게 되며 그 크기는 어떻게 되는지 의문이 든다. 은하수의 지름은 10만 광년 정도이고 두깨는 2,000광년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광속으로 8분, 토성까지는 1시간 정도의 거리지만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광속으로 4년 정도가 걸리며, 현재 연구결과로는 100억 광년 거리의 천체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과학의 발전은 경의로운가.


두번째 주제인 '우리는 누구인가'는 외계생명체와의 대화라는 주제로 시작한다. SETI(Search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에서 추진 중인 외계인 찾는 프로젝트에 대해 잠깐 소개한다. 1974년에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의 주도로 메시지를 전파에 실어 외계로 보냈는데 현재 25,000광년 거리에 있는 M13 구상성단을 향해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메시지에는 생명의 필수적인 다섯가지 원소인 수소, 탄소, 질소, 산소, 인의 원자번호가 기록되었으며, 지구상 생명체의 DNA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A,T,G,C의 화학식이 표시되어 있다. 또한 태양계의 9개 행성(명왕성 퇴출 이전)이 표현되었으며 그 중에서 이 메시지는 지구에 사는 생명체가 보냈다는 표시를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생명체는 어떤 물질로 구성되었는가. 이 문제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노자철학에 근간을 둔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이라고 표현한 동양철학에 빗대어 설명한다. 결국 별들의 진화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생명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빅뱅 우주에서 만들어진 수소, 그리고 적색 거성에서 만들어진 탄소, 산소 등이 초신성 폭팔에 의해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서 수소와 만나 메테인, 물 등 간단한 화합물을 만든 다음 수억 년 후에 태양계의 재료가 되어 결국 우리 몸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별은 우리의 고향이고, 우리는 별의 잔해(star dust)라고 말할 수 있다.  - p.145


DNA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설명을 지나 현명한 인류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는 현생 인류가 존재할 수 있었던 지구와 태양계의 환경적 특성을 논의한다. 


마지막 주제인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대답은 다소 명확하지 못하다. 이 문제에 대해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해답으로는 냉혹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는 계속 팽창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 가속 팽창을 일으키는 척력인 다크 에너지가 우주 전체의 에너지의 73%를 차지한다는 점을 한번 더 강조한다. 다만 종교적인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돌아갈 곳'에 대해서는 과학의 영역은 아니라고 단정한다. 평생동안 과학을 연구한 학자로서 과학의 한계를 인정한 결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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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시트콤
국내도서>자연과 과학
저자 : 크리스토프 드뢰서 / 전대호역
출판 : 해나무 201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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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전공자들에게 수학이나 물리학이란 가장 어렵고 접근하기 어려운 과목이 아닌가 싶다. 특히 나에게는 존재가치가 제로에 가까운 학문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계산을 해야 하는지, 이런 계산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식함의 극치였다는 점을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단지 공식대로 계산을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산의 알고리즘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같지는 않았을텐데. 아니면 이런 재미있는 책 한권 있었더라면 수학이나 물리학을 어렵게 여기지만 않았을텐데.


이 책의 저자는 몇달 전 출간되었던 <수학시트콤>의 저자라고 한다. <수학시트콤>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그만큼 인문 전공자들에게, 특히 나와 같이 수학이나 물리학 계통의 공식이 난무하는 학문으로 오해할 수 있는 학문에 대해 극도로 거부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과 계통의 학문에 부드럽게 빨려들게 만드는 입문서와도 같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100% 다 이해하지도 못했다. 특히 계산이 조금씩 나오는 내용들은 또다시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이란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이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단지 공식대로 계산만 하는 학문이라면 그야말로 암기과목이 아니겠는가. 


14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책의 첫 내용은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매 이야기마다 계산식이 난무하지만 뚜껑이 열리도록 두뇌에 불도 붙여주고 갑자기 재미난 이야기로 찬물로 끼얹어준다. 최근 과학입문서 특히 우주과학에 대한 책들을 보았고 또 보고 있는데 아직까지 난이도 있는 책을 읽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책이다. 혹시나 순수과학계통의 책에 이유없는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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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국내도서>인문
저자 : 이브 파칼레(Yves Paccalet) / 이세진역
출판 : 해나무 201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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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있었다."

 

책 띠지에 적힌 문구이다. 이 문장에서 느낄 수 있다시피 저자는 무신론자이다. 그는 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운명도 없고 신의 손도 없다.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인류의 미래는 오로지 우리가 이미 내린 결정, 내리고 있는 결정, 앞으로 내릴 결정에 달린 문제다. - p.14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며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로에 가깝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며 인간이 사라져도 우주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은 덧없이 스치고 가는 과정이자 흔적이 지나지 않는다. 우주에서 무한히 일어나지만 정작 우주는 알지도 못하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우주는 신과 달리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는다(p.29). 저자는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간은 보통 크기의 별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의 우둘투둘한 표면에 붙어사는 낱알 한 톨만 한 존재이다. - p.19

 

과학과 종교에 대한 비교가 인상적이다. 과학은 반항, 회의주의, 논쟁, 새로운 실험, 비판적 검증을 숭배한다면서 종교와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과학은 자신이 말한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앙이나 미신과 구별된다. (중략) 과학은 종교와 달리 골치 아픈 질문 공세와 까다로운 검증을 사랑한다. - p.34

 

우주는 137억년전 빅뱅에 의해 탄생했다고 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저자는 137년에 탄생한 우주의 역사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우주가 탄생한 지 10억년이 흐른 127억년 전에는 물질이 탄생했으며 46억년 전쯤에는 태양이 등장했다.

 

46억년 전 태양이 만들어지고 1억년이 지나고 태양계의 행성들이 정렬된다. 과연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있을 것인가 또는 태양계가 아닌 다른 은하에는 있을 것인가? 저자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나는 화성을 설명한 대목에 주목했다. 얼마전 작고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라든가 조지 웰스의 <우주 전쟁> 등 화성을 소재로 한 SF소설과 영화를 언급하면서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되는 화성은 인간의 환상울 부추긴다고 이야기한다. 얼마전 NASA의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착륙하여 탐사를 시작하였다. 앞으로 2년뒤 2014년까지 화성 표면을 누비며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태양계의 모습이 완성되고나서 10억년이 지난 35억년 전 세포가 출현한다. 즉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는 점점 줄어들고 산소가 늘어나면서 대기의 구성비가 고등세포들이 살기에 적합해졌다. 25억년 전 산소는 대기의 1% 벽을 넘어섰고 10억에서 8억년 전 사이에 드디오 산소가 10%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후 인간이 출현한 시대의 대기 중 산소인 21% 수준까지 상승하게 된다. 그러면서 단순 생물들이 진화가 시작된다. 생명이 점점 다양해 지면서 단세포 동물에서 다세포 동물로 발전하며 바다를 벗어나 육지로 올라오게 된다.

 

책의 성격은 생명에 관한 철학에세이를 표방하지만 상당히 과학적인 지식을 요한다. 우주의 관한 용어로 쿼크, 끈이론, 암흑에너지, 초신성, 웜홀 등 전문용어들이 언급되며 생명의 출현 이후의 내용에는 DNA구조라든가 생명공학 이론들이 등장한다. 전문용어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문장이나 내용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상당히 시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가득하다. 책의 초반부부터 마지막까지 언급되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구해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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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농담
국내도서>자연과 과학
저자 : 마크 S. 브룸버그(Mark S. Blumberg) / 김아림역
출판 : 알마 201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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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이지 않은(정상적이라는 표현이 잘못됐을 수도 있겠다) 생물체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와 사회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었다. <자연의 농담>이라는 책 제목만 보았을 때는 어떤 내용일지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기형과 괴물의 역사적 고찰’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다양한 종류의 발생적 이형이 내포한 생물학적 중요성은 탐구하고 이를 통해 ‘발생의 진화적 결과와 진화의 발생적 결과’를 조명한다. 즉 진화론적 관점과 유전학이나 발생학적인 관점에서 왜 이러한 이형들이 만들어지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생물학적인 여러 가지 이론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 들어본 용어들과 이론들에 대한 소개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우리가 흔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전형과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이형 사이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관점은 다양성이라고 주장한다. 즉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과 우리가 어디선가 발견할지도 모르는 생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다양성이다(p.26). 생각해 보면 사람의 생김새가 쌍둥이라 할지라도 다른 부분이 있으며, 얼굴말의 얼굴무늬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하지만 사람의 생김새라든가 얼굴말의 무니가 다른 점은 각 개체사이의 자연적인 변이라고 한다면 좀더 극단적인 변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변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하다. 또한 왜 그러한 변이들이 생겨나고 있는지 과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극단적인 변이들이 비교적 최근의 일은 아닐 것이다. 꽤 오래전에는 이러한 변이들이 태어났을 때 죽임을 당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신처럼 대우를 받았던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머리가 둘인 쌍둥이 하나만 보더라도 이런 존재가 바로 내 옆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도 한밤중이라면. 하지만 우리는 이들로부터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자연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p.36).

 

이 자연의 불완전성과 다양성이라는 이슈를 던짐으로서 ‘기형’ 또는 ‘괴물’이라는 이형들의 존재감이 전형들 못지 않게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형이 됐건 전형이 됐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로서 다양성을 보장하고 서로 적대하는 것이 아닌 서로 공존하며 서로를 주인공으로 여기는 삶의 자세를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다.

 

책 중간중간에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던져주고 있다. 사람이 어떤 과정에서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은 이 세상에 사람 밖에 없는지, 머리가 두 개인 쌍둥이나 남성인지 여성인이 애매한 양성인간의 출생 비율이라든가. 다소 끔찍한 상상일 수는 있겠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함께 어울려야 할 다양한 존재들의 하나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그리 끔찍하고 멀리해야 할 존재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장애인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이 정보기술을 이용해 좀더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인 보다 더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형’과 ‘괴물’들에 대한 영역으로 넘어가다보니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존재가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번역자가 생물을 전공해서인지 생물학적 용어들이 대한 역주가 적절히 제시되었고 문장들이 아주 어렵지는 않은 수준에서 깔끔한 번역이 돋보였다.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으나 역시 유전이나 발생 등 생명공학 관련 용어들을 마주했을 때는 독서의 브레이크가 걸리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던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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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국내도서>전공도서/대학교재
저자 : 빌 헤이스(Bill Hayes) / 박중서역
출판 : 사이언스북스 201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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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라는 제목도 그렇고 책 본문에 나와는 여러 가지 인체 사진들을 보아도 그렇고 전혀 쉽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도중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고 결코 난해하지만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일단 소설과 같은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1인칭 소설’ 내지는 ‘자전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물론 저자가 연구한 내용에 근거한 팩트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헨리 그레이를 중심으로 한 여러 인물들의 내면 심리상태와 행동이나 말들을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하나의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런 표현들이 저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연구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 전체가 결국 이 책을 쓰기 위한 준비과정이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 p.7

 

책의 프롤로그는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문장과 그 뒤에 몇 문장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어떤 한 분야에 몰입하여 일가를 이루려고 노력을 했었는지. 저자가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저자는 <그레이 해부학>을 읽고나서 그 책의 저자 ‘헨리 그레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헨리 그레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파헤치면서 본인이 직접 대학의 해부학 실습에 참여하기도 한다. 단지 눈으로 보는 참여가 아니라 메스를 들고 해부를 하기도 하는 경험을 통해 헨리 그레이를 알아가려고 노력했다.

 

책은 크게 1부 학생, 2부 화가, 3부 해부학자의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구분은 크게 의미없어 보인다. 책은 저자가 대학의 해부학 실습에 참여하기 위한 오리엔테이션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런 실습 참여과정을 보며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어떤 학문이나 지식도 ‘앎’에서 머물러 있지 않고 ‘실행’으로 옮기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저자는 헨리 그레이라는 유명 해부학자의 생애를 연구하기 위해 실습실에서 직접 메스까지 잡은 것이다.

 

저자는 <그레이 해부학>에서 인체사진을 그린 또한명의 헨리인 H.V.카터의 생애와 헨리 그레이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한다. H.V.카터는 헨리 그레이와 함께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H.V.카터는 헨리 그레이의 후배로서 헨리 그레이와 공동연구를 진행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헨리 그레이에 가려 그저 그레이 해부학에서 인체그림을 그린 사람 정도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이 H.V.카터가 매일같이 작성한 일기와 주변 사람들과 교환한 편지를 보면서 헨리 그레이를 만나는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역사적 사실을 추론해 낸다.

 

저자가 직접 해부 실습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들도 상당히 흥미롭다. 사실 해부라는 일이 내가 직접 한다고 생각하면 ‘토나올 일‘이지만 저자는 용케도 훌륭히 수행해 낸다. 해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해부과정이 상상이 되어 속으로 메스꺼움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피부를 벗겨내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오래된 시트지를 뜯어낼 때 나는 듯한 찢어지는 소리(p.130)로 묘사하였는데, 대략 그 과정과 소리가 상상되면서 울렁거림과 동시에 생명이 떠난 인체라는 것이 결국 생명이 없는 물질에 불과하구나 하는 허무감도 들었다.

 

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모두 흥미롭고 이해가 쉬운 것은 아니다. 뼈와 혈관, 장기를 비롯한 상당히 많은 인체조직에 대한 전문용어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모든 인체조직에 관한 용어들을 다 이해하고 이 책을 읽었다간 정말 의학을 전공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각 뼈의 위치라든가 장기의 기능들에 대한 설명이 언급될 때는 자세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음을 밝혀둔다. 그러지 않아도 이 책이 전해주는 감동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 감동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 번째 감동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한가지 사실을 파헤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다. 두 번째 감동은 저자의 실습과정과 헨리 그레이와 헨리 밴다이크 카터 등 실존인물들의 해부연구를 통해 깨닫게 되는 인체의 소중함이다. 특히 시체와 죽음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에 대해 신비감을 갖게 되었고,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다는 ‘해부는 곧 운명’이라는 표현과, 저자가 책의 말미에 언급했던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에 관해 배울 수 있다‘는 표현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도 배울 수 있었다.


저자가 도서관 자료를 통해 찾아낸 브로디 박사의 연설문도 인상적이다.


여러분이 비록 개업의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학생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식이란 끝없는 것이며, 가장 경험 많은 사람조차도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음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p.124


이 책의 원서 표지를 보니 정말 무시무시한 표지 디자인이었다. 궁금하신 분은 찾아보시라. 저자인 빌 헤이스가 쓴 또다른 책인 <5리터>와 <불면증과의 동침>이 2008년에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되었는데 이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읽기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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