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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2015년 신작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센트럴 파크를 처음 읽었고 스릴러와 로맨스가 결합된 새로운 장르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거기에다가 판타지적인 요소로 시간여행이라는 소재까지 결합되어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아서는 아버지로부터 24방위 등대를 물려받는다. 단 지하실에 있는 문은 절대 열어서는 안된다는 당부를 듣게 되는데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문열 열게 되고 그 이후로 그의 인생은 엄청난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그의 할아버지인 설리반도 같은 호기심으로 그 문을 열고 나서 24년동안 방황하며 살게 되었다.



그 문을 열게 되면 24년동안 1년 중 하루만 살 수 있는 저주를 받게 된다. 설리반은 24년동안 저주를 받고 풀려나지만 그 뒤를 이어 그의 손자인 아서가 저주를 이어받게 되었다. 그 와중에 리사를 사랑하게 되어 사랑을 이어가게 될 듯 하지만 1년에 한번 만나면서 사랑을 키워나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면서 아서는 24방위 등대의 저주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라는 환상적인 주제에 스릴러와 로맨스가 결합되면서 결말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이제는 기욤 뮈소만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겪는 아서의 경험들도 환상적이고 결말에서 주어지는 반전도 상당히 독특하다. 소설 내내 아서의 1인칭 이야기로 서술되다가 후반부에 리자의 1인칭 서술로 바뀌게 되는 점도 특이하다. 


2015년을 마무리하면서 올해 마지막 읽는 소설이라는 경험이 예측불허의 스토리와 함께 한해의 흥미로운 결말로 이어져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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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하면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온 사진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상투를 튼 채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보고 있는 사진인데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 표정의 강렬함때문일 것 같다. 하긴 혁명이라고 이름붙여진 운동을 이끌었던 분이 그정도의 표정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동학의 접주이자 동학농민군의 대장으로서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던 전봉준이 농민운동을 준비하고 이끌었던 과정을 풀어 쓴 소설이다. 사실 전봉준에 대해 개인적 관심이 없는 사람은 뭐 얼마나 재미가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는데 소설을 읽는 동안 당시 구한말 나라가 무너져가는 모습과 지금 오늘날의 정치적 이슈가 교차되면서 '나라없는 나라'라는 제목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대원군과 전봉준이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봉준은 농민운동의 지원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 대원군을 찾아간 장면인데 둘의 대화에서 전봉준은 시작부터 엄청난 주장을 한다. 상이 반이 되고 반이 상이 되는 것이 소원이냐는 대원군의 질문에 모두가 주인인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한다.


반도 없고 상도 없이 두루 공평한 세상은 모두가 주인인 까닭에 망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에게 소중하여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할 것인지 이것이 강병한 나라 아니옵니까?  - p.11


때는 갑신정변도 실패하고 대원군도 실각하여 민씨일가가 정권을 잡고 있었던 시절이다. 청과 일본이 지속적으로 조선을 간섭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세력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전봉준은 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순수한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하였다. 그 와중에 청과 일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도 부국강병의 과정을 모두 외국의 힘을 의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인지 지역별로 많은 농민들이 전봉준을 도와 농민운동을 일으키고 일을 도모하고 진행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다만 결국 마지막 장면이야 역사에서 알려진 대로 끝나게 되는 결말이 예측되기에 결말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다. 그래도 읽다보면 역사적 사실을 뒤집고 과연 전봉준이 이 운동을 성사시켰다면 어찌되었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중간중간에 이철래와 호정, 을개와 갑례의 가슴아픈 러브라인이 이어지기도 한다. 가족들도 다 버리고 애국의 길로 나선 농민운동 참가자들이 있었기에 비록 실패한 운동이라 하더라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혼불문학상의 수상작이다. 수상장 답게 스토리의 잔재미만 추구하지 않고 문장 하나하나에 엄청난 노력의 결과가 느껴진다. 상당히 예스러운 문체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읽혀진다. 처음 듣는 단어들도 많아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읽었지만 가독성에 문제는 없었다. 일전에 사두고 아직 읽지 못했던 <홍도>도 혼불문학상 수상작이었다니 읽어봐야겠다. 아울러 수상작이 이정도의 수준이라면 향후 혼불문학상의 수상작들에 관심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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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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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청부업자도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생각하고 된다면 이 책을 읽을 때 상당히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나 역시 책에서 나오는 몇가지 에피소드를 읽고 상당히 거부감을 가졌는데, 살인 청부업자도 직업이라는 가정을 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이해하게 되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살인청부업자라는 직업의 도덕윤리적, 법적 문제가 전혀 없다고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 살인청부업자를 일종의 직업으로 받아들여야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냐 하면 이 책의 주인공인 켈러라는 살인 청부업자는 기존의 잔인하고 집요한 사이코패스와 같은 살인마가 아니라 그냥 살인을 해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돈을 받고 응대해 주는 하나의 비즈니스맨과 같은 형태로 포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여타 인물과의 대화나 주변환경 묘사를 통해 켈러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여타 추리소설에서 '살인'이 이야기의 발단이자 시작이 되는 반면 이 책에서의 '살인'은 이야기 구성의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살인이 또다른 살인을 불러일으키며 과연 살인자가 누구일까 하는 긴장감으로 읽게 되는 여타 추리소설과는 달리 이 책의 살인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객들에게 요구를 받고 켈러가 다양한 방법으로 살인하는 장면을 아주 '태연하게' 묘사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죽이고자 하는 사람의 차에 몰래 잡입하여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살인하는 장면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켈러는 천천히 몸을 바로 했다. 루스벤은 열쇠를 더듬거리면서 시동을 켜지 못하고 있었다. 이자가 정말 루스벤일까?

맙소시, 정신차려. 아니면 누구겠어?

켈러는 남자의 귀에 총구를 갖다 대고 탄창을 비웠다.  - p.221


직업상의 이유로 실수를 하기도 한다. 즉 의뢰받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도 발생하는 것이다. 또는 죽이고자 하는 사람과 함께 있던 또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호텔의 다른 방에 가서 남자를 죽이고 나서 같이 있던 여자를 죽였는데 알고보니 두 사람은 죽이려고 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난감해 하는 장면은 코믹스럽기도 하며 동시에 끔찍하다.


여자는 거래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었고, 자기가 있어야 할 욕실에 남아 있지도 않았다. 멍청한 년이 그러질 못했다. 기어코 문을 열고 나와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p.196


의뢰받은 사람에게 계약금을 받고 일을 마쳤는데 잔금을 주지않고 사라져 버린 사람을 추적하여 끝까지 받아내는 집요함도 묘사하고 있다. 아무튼 모든 살인의 과정은 극도의 긴장감을 요구하는 과정이 아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켈러는 타이어 스패너를 로더하임의 명치에 꽂았다.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로더하임은 괴상을 소리를 내면서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무릎을 꿇었다. 켈러는 셔츠 앞섶을 잡고 자갈 길 위로 질질 끌어서 스바루가 두 사람을 가려주는 지점까지 갔다. 그런 다음 타이어 스패너를 머리 위 높이 들어올렸다가 로더하임의 머리에 내려쳤다.

로더하임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조용한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 뻗었다. 몇 대 더 때려서 끝낼까?  - p.257


살인장면에 대한 묘사가 매우 자연스럽고 살인자의 태도가 매우 태연스럽게 묘사되기 때문에 집중하고 결말에 다다르면 '언제 사람을 죽인거야?'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다음 문장을 보자.


그들은 뒷방으로 들어갔다. 턱살이 늘어진 사내가 문을 닫고 몸을 돌리는 사이 켈러는 사내의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지점을 손날로 쳤다. 사내의 무릎이 풀리자 켈러는 목에 철사를 감았다. 일 분 후에 그는 문밖으로 나갔고, 한 시간 후에는 북쪽으로 향하는 고속철을 타고 있었다.  - p.123


잉글먼이 몸을 내밀자 켈러는 주머니에서 가느다란 철사 올가미를 꺼내어 잉글먼의 목에 감았다. 교살은 빠르고 소리 없고 효과적이었다. 켈러는 잉글먼의 몸이 길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놓였는지 확인하고, 혹시 건드렸을지도 모르는 모든 곳에서 지문을 닦아 냈다. 그는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나갔다.  - p.38


켈러는 목 조르기로 답을 대신했다. 확실히 의식을 잃을 때까지 졸랐다. (중략) 그는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램즈게이트가 늘어져 있는 사무 의자를 창가로 밀고 가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킨 다음 창 밖으로 밀었다.  - pp.376~377


그는 배신자 뒤로 가서 그 더러운 입에 한 손을 얹고 반대쪽 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콧구멍을 막은 뒤 공기를 틀어막은 채로 천천히 꽤 높다 싶은 숫자까지 헤아렸다. 켈러가 손을 놓자 배신자의 손이 한쪽으로 툭 떨어졌다.  - p.384


직업적으로는 완벽한 처리를 추구하지만 부탁받은 지역을 차나 비행기, 또는 렌터가로 이동하면서 자연풍경을 느끼고 은퇴 후에 살만 한 곳인지를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장면은 앞서 말한대로 살인 청부업자도 하나의 직업일 수 있겠구나 하는 동정심마저 느끼게 한다. 자살을 하고 싶은 사람의 요청을 받고 그 사람을 '죽여주는' 과정은 좀 슬프기까지 하다('현장의 켈러' 편).


이 책은 단편소설집이다. 하지만 켈러라는 동일인물이 주인공이어서 그런지 단편소설 같은 느낌은 주지 않는다. 또한 이야기가 흐름을 가지고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의뢰받은 사람을 죽이고 나서 그 사람이 키우던 개(넬슨)을 가져다가 키우는 장면이 다음 소설로 이어지기도 한다.


흥미로우면서도 한편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주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두려움이 사로잡혀 읽게 되는 소설이다. 사람을 죽이면서 켈러가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살인이 가장 쉬웠어요."


살인해드립니다
국내도서
저자 : 로렌스 블록(Lawrence Block) / 이수현역
출판 : 엘릭시르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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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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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멜리아라는 가상의 국가에서 엘리트 야바위꾼들이 벌이는 국민 호주머니 털기 작전의 전말을 소개한 소설이다. 가상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곧바로 우리나라를 가상의 국가로 빗대서 쓴 이야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작가의 말을 통해 대한민국의 어떠한 특정 사실이나 인물과도 무관함을 밝혀둔다고 안내해 주고 있다.


까멜리아는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직원들을 거리로 내몰렸다. 그 중에 까멜리아은행은 건실한 은행인데도 불구하고 해외 산업자본인 유니온 페어에 팔리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랐던 기업이다. 까멜리아은행에서 노조활동을 하다가 해고된 루반은 퇴직금마저 사채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뺏기면서 사채업자가 되었다.



루반이 까멜리아은행에 재직하던 질레, 베르친, 노앙과 함께 주변머리회라는 이름으로 아웃사이더 조직을 만들었다. 은행에서 촉망받는 일류대 출신 주류들을 공통의 적으로 두고 변두리의 비주류끼리 힘을 모으자는 의미의 모임이었다. 기획팀장이었던 노앙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이 모임은 질레를 두고 루반과 노앙이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깨지기 시작한다. 결국 질레는 노앙을 선택했고 둘은 결혼했으니 루반은 해고를 당한 이후 처음으로 악성 채무자인 질레를 술집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러브스토리가 이어질 듯 하지만 이야기는 곧바로 까멜리아은행를 유니온페어가 인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조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엄청난 비밀을 목도하게 된다. 비밀을 파헤치게 되는 과정은, 루반이 해고된 이후 유니언페어 까멜리아의 대표로 선임된 노앙을 도와 법률자문으로 일하는 변호사 샤리가 루반의 사무실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샤리는 일억원을 제시하며 모 은행계좌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루반에서 일거리를 맡긴다. 이 제안에 루반은 망설이지만 결국 까멜리아은행에 아직 재직하고 있는 베르친과 까멜리아은행 공대위의 도움을 받아 샤리와 노앙이 벌이는 내막을 조사해 가기 시작한다.


"유니온 페어가 은행을 사들인 돈에 까멜리아 놈들 게 들어가 있다면?"

"까멜리아 놈은 펀드에 돈 태우면 안 되는 법이라고 있냐?"

"은행 매각을 결정짓는 권한을 지닌 놈들 돈이 들어가 있다면?"

"그거야 완전 매국노지."

"그걸 잡으면 게임 오버야."  - p.84


유니온 페어가 까멜리아은행을 인수하게 된 이면에 사실은 까멜리아 엘리트들의 자금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소설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과연 이 비밀이 폭로되고 까멜리아은행은 정상화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힘을 가진 1%에 의해 비밀은 감추어지고 검은머리 외국인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될 것인가.


그는 자신의 주변인물들이 신주단지처럼 붙들고 있는 것이 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탐욕이었다. 돈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이 꿈꾸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욕망의 황홀한 무지개와 같았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갈증 같은 것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목마르게 할까.  - pp.47~48


아무리 저자가 한국의 사정과는 무관함을 밝히고 있지만 까멜리아은행은 외환은행을, 유니온 페어는 롤스타를 의미한다고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데 들어간 자본주의 상당부분이 외국인을 가장한 한국 사람이면 어떨까.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멀쩡한 은행을 외국자본에 파는 것처럼 가장해 고위 공직자와 로펌 관계자들까지 가세해 엄청난 사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면 정말 쳐죽일 놈들이 아닌가. 아무리 헬조선이 난무하는 시대라하더라도 이정도 망나니 국가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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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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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학교에서 빅 브라더, 파놉티콘 등 감시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이슈들을 강의할 기회가 있어서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에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추천의 글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퇴근길에 서점에서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을 마냥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사회가 되어 가는 우리 현실을 좀더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동안 지그문트 바우만 ≪친애하는 빅브라더≫, 로빈 터지 ≪감시 사회, 안전장치인가, 통제 도구인가?≫, 데이비드 라이언 ≪감시사회로의 유혹≫, 한병철 ≪투명사회≫ 등을 통해 감시사회가 일상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진단할 수 있었다. 정말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SF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점차 감시되고 통제받고 있는 느낌은 나만이 가지는 생각은 아닐 것 같다.



책은 마커스 얄로우라는 이름의 17세 소년이 주인공이다. 시대는 2015년의 현실은 아닌 것 같고 곧 일어날 지도 모르는 수준의 근미래로 예측할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스쿨북이라는 노트북컴퓨터를 지급하여 학생들이 타이핑하는 모든 글자를 전송하고 인터넷으로 오가는 모든 단어를 검열하는 등 학생들을 감시하고 있다. 학교 곳곳에는 보조인식 카메라를 달아 걸음걸이로 학생들을 판별해 내기도 하며, 학생들은 대체현실게임(Alternate Reality Game)이나 실제액션롤플레잉(Live Action Role Playing) 게임을 하며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마커스는 대릴, 졸루, 버네사 등 좋아하는 친구들 세명과 함께 그들이 즐기는 <하라주쿠 펀 매드니스>게임을 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제끼고 만난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도중 지진이 일어나는 듯한 충격과 함께 테러 용의자로 체포되면서 수감된다. 고문을 당하고 일주일만에 나오게 된 친구들은 테러리스트로부터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국토안보부의 감시와 통제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다.


"하루 종일 겁에 질려서 고객을 처박고 얌전히 앉아서 들키지 않기만 바라는 걸 배웠니? 넌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것 같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금 이 상황이 앞으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가 될 거야. 지금부터는 점점 더 나빠지고 또 나빠질 뿐이야. 대릴을 돕고 싶어? 저놈들을 박살낼 수 있게 도와줘!"  - p.174


마커스와 친구들은 엑스박스를 이용한 폐쇄적인 네트워크인 엑스넷을 만들어 대항하며 책의 중반부를 향해 스토리를 이어간다. 마커스와 엑스넷의 동료인 엔지와의 러브라인이 그려지면서 중반이후에는 약간은 지지부진한 스토리를 이어가지만 마커스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젭이라는 친구가 전해준 편지를 통해 게임 당시 부상을 당했던 대릴의 소식을 듣게되었고 그 편지를 부모님께 공개하면서 이야기는 속도감있게 진행된다. 수감되어 고문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숨겼었지만 부모님께 털어놓으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과연 17세 어린 아이들이 국가기관을 상대로 하는 이 저항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승리 여부를 떠나 작가가 구상한 이 소설 속의 디스토피아는 정말 말그대로 암울하고 슬프다. 상점에서 카드결제 내역을 가지고 사람들을 감시하는 세상, 지하철 교통카드의 결제 내역이 평소의 패턴과 다르면 '비표준적인 승차 유형'이라는 이유로 감시하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우울하다. 기술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힘과 함께 사생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p.123)고 생각한 마커스는 국가기관의 보호를 받기보다 스스로 자유를 만들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다.


감시사회, 통제사회를 넘어 투명사회로 향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어떤 방법으로 살아야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생각의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었다. 아무래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비교하게 되지만 결국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극단적인 감시나 통제를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도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책의 심각적인 이슈제기와는 별도로 책에서 언급되는 파이썬을 배워볼까 하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욕구를 다시 되찾은 것도 이 책을 읽은 뒤에 얻은 큰 소득 중의 하나이다.


리틀 브라더
국내도서
저자 : 코리 닥터로우(Cory Doctorrow) / 최세진역
출판 : 아작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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