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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몰락
국내도서>경제경영
저자 : 남우현
출판 : 랜덤하우스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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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주 시의적절한 책이었다. ‘내집 마련이 절실한 3040세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이라는 부제목처럼 3040세대의 중반부를 넘어선 나로서는 정말 궁금하기도 했고 꼭 알아야 할 내용이었다. <아파트의 몰락>이라는 제목처럼 그냥 아파트가 몰락할 것이라는 사실만을 던져주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더 유익했다.



책의 초반부는 ‘아파트는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민의를 호도하는 언론사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던 2000대 초 급격하게 상승하던 아파트 가격은 2008년 미국 경제위기 여파로 하락세를 유지하다가 최근에 보합권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2006년 말에 집을 장만한 나로서는 집값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 집 아파트 가격만 보더라도 이 사실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합권을 유지하는 지금 대부분의 언론들은 ‘부동산 시장 바닥론’을 주장하며 지금 당장 아파트를 구입하지 않으면 안될 것마냥 떠들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의 1장부터 4장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개발이 시작되고 나서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의 상황까지 역사적 사실을 서술해 주고 있다. 5장부터의 내용은 앞부분의 내용을 복습하는 듯한 분위기지만 정말 중요한 인사이트를 던져주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에 급격하게 하락했던 금리는 2010년 이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2%대를 유지하며 방어해왔지만 앞으로는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으며 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주택가격은 하락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일부 아파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아파트의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큰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파트 가격이라는 것은 단 1%의 거래물량이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이 떨어지게 되면 금융기관들은 부실대출이 증가하게 될 것이며, 전세계적인 금리상승 기조에 따라 한국은행도 금리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크게 잃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유사한 사례로 6장에서는 일본의 부동산 가격 버블 붕괴를 이야기하고 있다. 

7장에서는 주택문제의 원인이자 해결방법인 인구구조라는 다소 광범위한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까지 저출산 기조가 유지되면서 인구구조가 피라미드형에서 항아리형으로 이동하였고 더 나아가 역피라미드 구조로 가게 될 것이며,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35~54세 인구가 자연스럽게 감소하면서 주택수요가 감소해 일본처럼 주택가격이 붕괴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결국 아파트의 투자가치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현재 사는 집에 대출이 없기 때문에 상환의 부담은 없으나 집을 더 넓혀가야 하는 상황에서 대출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말로만 듣던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하게 되었다. 미래를 보고 예측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 미래를 잘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정책과 비즈니스를 만들어 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없게 되기를, 또 살고 있는 집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당하는 사람이 없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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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진화의심리학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지은이 P. D. 우스펜스키 (부글북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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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관계로 책 첫부분에서는 심리학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심리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으로서 그동안 철학, 종교, 예술, 신비주의 등의 형태로 존재했었다고 한다. 심리학은 크게 두 분야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인간 현재의 모습을 발견의 대상으로 보고 연구하는 심리학 체계로서 과학적 심리학 분야가 있고, 인간을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장래 이룰 수 있는 모습을 바탕으로 파악하는 심리학 체계가 있다. 두 번째 심리학 체계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인간의 가능한 진화(Psychology Man's Possible Evolution)라는 관점의 연구이며, 이 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P.D.우스펜스키는 187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생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 구르지예프를 만나 함게 공부했으며 이 책은 그가 생전에 했던 강연 내용을 묶은 책이다. 강연 내용을 정리한 책이기 때문에 실제 강연을 듣는 듯한 논리정연한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에 ‘지난 강연에서는’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었지만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그가 하는 강연이 빠지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이 책의 원제목인 ‘인간의 가능한 진화’라는 관점에서 심리학은 ‘인간의 가능한 진화의 원칙들과 규칙들과 사실들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될 수 있다(p.21).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과연 심리학과 진화가 무슨 관계가 있냐는 것이다. 저자는 진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전과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는 진화는 없고, 인간이 자신에게 가능한 진화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또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어야만 진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 p.23.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두면 성장하지 않은 상태로 늘 그대로 남거나 제 스스로는 성장하지 못하는‘ 내면의 어떤 자질들과 특징들이 성장하는 것(p.24)을 진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진화를 이루어가려는 인간이 ’어떤 방향‘의 ’다른 존재‘가 될 것인지를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숙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p.26)이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이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현재 갖고 있지 못하지만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능력부터 획득해야 한다(p.29).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잘 모르며 자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p.30).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인간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인간은 ‘기계’라고 정의한다. 즉, 인간은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움직임이 하나도 없으며, 외부의 충격과 영향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기계라는 것을 의미한다(p.31). 하지만 인간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뭔가를 하는 능력을 항상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있다(p.32). 인간은 이러한 특성을 이해해야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만은 것들을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바꿔놓기 시작할 것이다(p.33). 이 사실을 깨달아야만 인간은 자신이 기계이기를 거부할 수 있는 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새로운 능력을 확보하려면 반드시 그 전까지 그 사람이 자신의 내면에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한 그 자질들을 찾아내어 개발해야 한다. 많은 자질들 중에서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자질은 ‘의식(consciousness)’이다(p.39). ‘지성(intelligence)’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awareness)'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의식은 결코 언제나 똑같은 상태로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p.41). 하덕규의 노래 ’가시나무‘의 노래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 사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는 이런 사람이 되었다가, 그 다음 순간에는 또다른 사람이 되는 식으로 언제나 똑같은 것이 아니라 끝없이 변한다(p.34). 이와 마찬가지로 의식은 사람의 내면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특별한 노력을 통해서 의식을 지속적으로, 또 통제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의식의 순간은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는데 모든 일에 대해서 다 기억하지 않는 이유는 의식을 가진 순간들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자기공부(self-study)'라고 정의한 내용(이 책에서 언급한 두 번째 심리학의 정의)도 흥미롭다. 심리학은 천문학처럼 동떨어진 무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복잡한 새 기계를 연구하듯 인간이라는 기계를 연구하게 된다. 이 자기공부는 사고, 느낌, 본능 기능, 운동기능 등 4가지 기능에 대한 공부로 시작한다. 이러한 기능 이외에 인간은 쓸모없는 기능들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백일몽, 자기 자신과의 대화, 헛소리 등이다. 모두 통제불가능한 것이며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저절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왜 쓸모없는 기능이라는 건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은 크게 4가지 상태가 있다. ‘수면’, ‘깨어있는 의식’, ‘자의식’, ‘객관적 의식’ 등이다. 사람은 항상 수면상태에 있는데 수면 속에서 모든 것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깨어날 수 있는가? 먼저 나 자신이 잠든 상태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깨어날 수 있다고 한다. ‘자의식’과 ‘객관적 의식’은 상당히 고차원의 의식으로서 이 단계까지의 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강도 높은 공부가 필요하다(p.78).

저자는 심리학에 대한 세 번째의 또다른 정의로 거짓말에 대한 연구‘라고 정의하였다. 의식의 4가지 상태에 따르면 ’객관적 의식‘의 상태에서만 절대적인 진리를 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진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없지만 마치 진리를 안은 것처럼 꾸밀 수는 있는데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세를 하지만 인간은 나 자신조차도 모르는 존재이다. 그래서 심리학의 또다른 정의로 거짓말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 것이다.

인간은 '정수(essence)'와 ‘인격(personality)'의 두 가지 파트로 구분될 수 있다(p.86). 정수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며, 인격이란 사람이 태어난 뒤에 얻어지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정수가 인격을 지배해야 하는데 인격이 정수를 지배하거나, 정수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성장이 멈춘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저자의 예로는 게임에 심취하면 정수의 성장이 멈출 수 있다고 한다(p.90). 이 게임이라는 것이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 게임은 아니겠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단순한 놀이를 의미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4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를 응용하여 인간을 7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제안한 점이 인상깊다. No.1 카테고리는 운동 또는 본능센터가 지적 센터와 감정센터를 지배하는 사람이다. No.2 카테고리는 감정센터가 지적센터, 운동센터, 본능센터를 지배하는 사람이다. No.3 카테고리는 지적 센터가 감정 센터, 운동센터, 본능센터를 지배하는 사람ㄹ이다. 이 세가지 카테고리는 비슷한 수준이며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속해있는데 결국 No.1 카테고리는 육체적인 사람, No.2 카테고리는 감정적인 사람, No.3 카테고리는 지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좀더 고차원적인 인간 카테고리로 4가지를 더 언급한다. 학습을 통해 자의식을 이루고, 더 나아가 객관적인 의식을 가지고 영원한 ‘나’와 ‘자유의지’를 갖게 된 사람들의 형태이다. 이러한 일곱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종교, 예술, 과학, 철학 등 넓은 범주로 확대시켜 해석해볼 수 있다.

이 일곱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설명을 지속하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짧기 때문에 이 저자가 말한 학설이 과연 어디까지 인정받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활용가치가 있는지를 학술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간을 기계로 치부하고 인간은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단정한 것에 대해서는 일부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이 기계를 사용하려면 그 사용방법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듯이 인간도 그 스스로를 잘 알아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동의하지만 사람이란 기계와는 다른 점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후천적인 학습을 통하여 더 나은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또 일곱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인간 특성을 분류한 것에 상당히 공감이 가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인 두 개 이상 특성이 중복된 사람들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심리학 관련 도서라고 하면 자기계발과 연관지어서 설명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렇게 ‘쉬우면서도 어려운’ 심리학 책은 처음 읽어 본다. 줄간격도 상당히 넓고 약 250 페이지 밖에 되지 않아 2~3시간이면 끝낼 수 있겠다 싶은 것이 꼬박 하루를 읽고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초반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철학이나 종교, 예술 등 상당히 포괄적인 범위를 아우르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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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예수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지은이 제이 조 (베다니출판사,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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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서 보수 장로교회를 통해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성령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었다.

이 책 본문을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보았을 때 뭔가 나의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할 것 같은 느낌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일단 장로교를 다니기 때문에 성령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말의 인과관계가 옳지 않다. 어떻게 장로교를 믿는다고 성령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사실 나 역시 섬기는 교회가 장로교단에 속해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거부감일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교단을 믿기 때문에 뭔가 부족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뉘앙스의 첫 문장이 썩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다른 여러 교단의 교회에도 가보았고 정교회나 성당과 같은 비개신교 종파의 집회에도 가보았지만 개신교 중에서도 장로교단이 보수적이라는 느낌은 맞는 듯 하다. 보수적이라고 성령체험을 하지 못했다거나 성령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리라는 것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입신’ 체험, 즉 살아서 천국을 방문하는 체험에 대한 간증이다. 저자가 말한대로 나 역시 ‘보수적인 장로교’에 속해있어서 그런지 입신이라는 말부터 거부감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아니, ‘생소함으로 인한 거부감’으로 해두는게 좋겠다. 책의 초반부를 보면 방언의 은사가 보편화되었듯이 기도하다가 뒤로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입신의 은사도 믿는 자들에게 더 큰 믿음과 확신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20여 년 전 대학시절 교회 선배에게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하나님 나라? 천국? 죽어서 가는 곳? ... 뭐 이정도의 답변 밖에 할 것이 없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천국은 결국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믿는 자는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다. 하지만 천국의 소망이 이 땅에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책과는 큰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죽어서 가는 천국’에 대한 소망만 강조하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천국 체험을 비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존중한다. 내가 그런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자가 받은 은사와 체험을 이 책을 통해서 공유할 있게 된 것이 감사하다. 2장에 나오는 저자가 체험한 여섯 번의 천국방문을 통해 천국를 간접경험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2장의 내용을 한번 읽고 넘길 수가 없어서 몇가지 사례들은 3~4번 읽어 보았다. 환상을 통해서나마 천국을 보게 하심이 정말 놀라운 체험인가.

꿈과 환상의 안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가까운 이때에 현대 성도들에게 세계적으로 큰 부흥을 원하시는 주님의 마지막 성령의 부으심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p.51

3장 이후의 내용들은 치유사역과 축사사역을 통한 초자연적인 기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시대에 ‘기적’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기적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기적을 맹신해서도 안되겠지만 기적을 불신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통해 책 초반부에 가졌던 약간의 거부감이 상당히 누그러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받은 ‘입신’의 은사가 부럽지는 않다. 그 이뉴는 언젠가 죽어서 갈 곳이라면 미리 경험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또 하나의 이유는, 천국을 경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과 직장에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크리스찬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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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이란
존 W. 가버 저/박민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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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하면 이슬람교가 떠오르니 이란과 이슬람교와의 작은 ‘인연’에 대해 먼저 소개할까 한다. 결혼 전 연애시절에 지금의 아내와 한남동 이슬람 사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종교에 대한 관심으로 아현동 정교회 성당, 정동 성공회 성당, 조계사 등 서울 시내 종교기관에 ‘구경’하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그럴 시간을 내기 힘들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기독교인인 나로서는 이슬람 사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정문에 쓰여진 문구를 보고 상당히 놀란 기억이 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 분의 사도입니다.” 아마 가본 사람은 이 문구를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하느님’도 아니고 개신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이라고 표기한 것에 대해 더욱 놀랐다.

또 하나 이야기는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운영되고 있는 이란인선교회에 관한 일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모임을 각 나라별로 여러 팀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란인을 중심으로 한 이란인선교회이다. 여기에서 몇 달 정도 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간단한 이란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란인과의 교제를 통해 중동 국가 사람들에 대한 웬지 모를 ‘거부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중국이라는 나라에는 세 번 관광차 방문하였다. 세 번 모두 다른 지역이었는데 처음 가본 곳은 심양, 단둥, 백두산 등 동북지역이었고 두 번째 방문은 상해와 소주 지역, 세 번째 방문은 산둥성 웨이하이 주변이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건물과 도로가 건설되고 있었으며, 인상깊었던 것은 상해 황포강 유역에는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반면 또 다른 시골지역에는 사진으로만 봐왔던 우리나라 60년대 풍경을 재현한 듯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혀 다른 나라라고 생각할 만큼 그 차이는 컸다.

아무런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중국과 이란. 책 제목을 보면서 가장 원론적인 궁금증은 중국과 이란이 도대체 무슨 관계 또는 공통점이 있길래 두 나라를 묶어서 책으로 펴냈을까 하는 것이었다. 궁금증은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면서 바로 풀렸다. 중국과 이란의 관계는 1970년대 소련 세력을 봉쇄하려는 것, 1990년대에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려는 것 등 다분히 이해관계로 지탱해온 관계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넘어서 문명적 연대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 중국은 수-당-송-금-원-명-청으로 이어지는 제국의 모습으로 오랫동안 유지된 왕국이었으나 이전에 누렸던 높은 지위를 서구 세력에 의해 빼앗기는 공통적인 경험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중국과 이란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념과 이해관계 둘 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p.19). 또한 중국과 페르시아 모두 농경, 도시사회였으며 끊임없이 북쪽의 원시적이고 빈곤한 유목사회의 위협을 받은 점이 양국의 관계를 형성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p.48).

이러한 중국과 이란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는 이란과 중국 무슬림 사회 간의 관계였다(p.217). 특히 중국 신장 지역 내의 무슬림들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룹은 위구르족과 후이족이다. 이들은 반한족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반체제 활동의 가능성이 높았고 중국 정부는 이를 우려하고 있다. 좋은 관계의 역사적 전통 가운데서도 이러한 이유로 두 나라는 약간의 줄다리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책은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중국과 이란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2~4장에서는 시대별로 중국과 이란이 어떤 국제적 관계를 맺어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5장에서는 신장지역의 무슬림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6장부터 시작된다. 이 책에서는 중국과 이란의 관계가 주목받는 이유를 결국 핵으로 대변되는 무기 수출에 관한 사항과 석유로 대변되는 에너지 자원의 지배 또는 협력에 관한 사항으로 보았다. 하나 덧붙이면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부분이다. 반대로 이야기해서 미국의 입장에서 눈엣가시 같은 중국과 이란 두 나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은 2006년이다. 하지만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선포하였지만 미국 항공모함이 계속 통과하는 등 전운이 감돌고 있는 지금 이 책의 번역출간은 아주 시의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부록을 포함하여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를 보고 약간의 위압감을 느끼게 되지만 심오한 철학이나 수식이 난무하는 과학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니고 그저 두 나라의 역사적 역학관계와 현재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변화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던져주는 책이니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국제 동향에 대해 관심있는 분 뿐만 아니라 세계역사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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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제정신
국내도서
저자 : 허태균
출판 : 쌤앤파커스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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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구분이 애매모호함을 통해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현실인가 환상인가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공상과학에서 있을 듯한 상황이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우리는 늘 착각 속에서 살고 있으며 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가끔은 제정신>이라는 책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착각하게 되는지, 또는 착각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착각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내던지는 사례는 지동설과 천동설이다. 천동설이 유력하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은 사형에 처하기까지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졌지만 지동설이 유력하게 된 지금의 시대에서는 사형까지는 아니지만 대단한 착각속에서 살고 있다는 조롱을 받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지동설이 맞는지, 즉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사람이 지구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 사실을 실제로 확인하고 믿는 사람보다 책이라는 간접적인 지식습득 수단을 통해서 사실이라고 간주하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이다.

대학입시철이 되면 절이나 교회에는 많은 신도들이 모여서 자녀들의 합격을 위해 기원한다. 또 대학 정문에는 어김없이 합격엿이 달라붙는다. 만약에 자기 자녀들이 실력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신에게 간구하여 합격을 해 주었다면 이건 대단한 부정입학이 아닐 수 없다. 정당하고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 노력한 학생들을 뒤로 하고 절이나 교회에서 기도만 한다면 합격할 것이라는 대단한 착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인간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또 개개인마다 바라보는 관점이 다 다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 그래서 착각을 피해거나 또는 착각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재미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꽤 재미있는 심리학 책이다.


가끔은 제정신 
허태균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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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크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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