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의 책이 집에 두세권 있는 것 같은데 직접 읽게 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나는 처음 책을 접하기 전에 그 책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두번째 편을 읽기 시작하고나서 첫번째 편의 인물과 전혀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단편소설집이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르게 되었다.
물론 작품들마다 공통점은 있다. 책의 제목처럼 55세는 아니지만 대부분 50대 전후에 은퇴를 하거나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들이다. 어떤 소설은 마음이 착잡해 지기도 하고 또 다른 소설들은 주인공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은 내용도 있다. 수록된 다섯편은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긴 느낌이고 중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짧은 느낌이다. (마지막 저자후기에서 저자는 중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먼저 첫번째 작품인 '결혼상담소'는 나카고메 시즈코라는 50대 여성이 남편과 이혼을 하고나서 결혼상담소를 통해 새로운 삶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 이야기이다. 그러는 와중에 실연에 아파하는 30대 남성을 만나 처음으로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잠자리를 갖게 되면서 이후의 삶이 변화를 가져오고 희망을 갖게 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반전의 기회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설 내내 얼그레이라는 차 이야기그 계속 나와 입맛을 다시게 했다.
두번째 작품인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번'은 소형 출판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 공사장에서 교통 정리를 주요 업무로 하는 안전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인도 시게오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그는 노숙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하여 꿈에 나타난 장면들을 노트에 쓰고 또 읽곤 하는 습관이 있다. 어떻게든 노숙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일과 건강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중 허리 통증을 심하게 느끼면서도 일을 계속하게 된다. 일하면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 후쿠다 사다오가 죽음을 향한 길을 함께 걸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30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어머니와 죽음의 순간에 만나는 장면을 보고 내가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앞선 이야기에 비해 다소 암울한 미래를 결말로 제시하고 있다.
세번째 이야기인 '캠핑카'는 회사에서 조기퇴직 후 캠핑카를 구입하여 아내와 여행을 다닐 꿈을 꾸고 있는 토미히로 타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는 딸의 조언에 따라 재취업을 결심하지만 곧 58세에 재취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예전 회사에 다니면서 인맥을 쌓인 거래처 사람들에게 전화로 재취업을 부탁하는 과정에서 심하게는 이력서를 먼저 보내는 것이 절차가 아니겠느냐는 말까지 듣는다. 사실 퇴직하고나서 최고 수준의 퍼스널 브랜딩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즉 명함에서 회사와 직책을 떼버리면 남는 것이 없는 게 현실이 아닐까 싶다. 자녀들이 어린 관계로 적어서 환갑 지나서까지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참 암담해지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인 토미히로는 인재 파견회사에서 카운슬링과 상담을 받으면서 '내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 도달한다. 그 와중에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친구가 소개하는 한 병원을 찾는다.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아내와 새로운 관계설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받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게 된다.
네번째 이야기인 '펫로스(pet loss)'에서는 애완견을 기르며 가족이나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채워나갔던 다카마키 요시코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녀의 남편은 6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TV를 보거나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다. 다카마키 요시코는 인터넷을 통해 시바견을 분양받아 '보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심장병에 걸려 죽는 바람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는다. 애완견을 기른 이후로 남편과의 관계가 서먹했지만 죽음 이후에 보비 2세를 계획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예상하게 만들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다섯번째 이야기인 '여행 도우미'도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하지만 그 준비를 하는 과정에 암울한 스토리가 이어진다. 주인공인 시모후사 겐이치는 트럭 운전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트럭 운전으로 물류 업무를 하다가 예순에 퇴직한다. 뜨문뜨문 일을 받아서 하긴 하지만 지금은 책을 읽거나 일본차를 마시는 것이 취미인 그런 사람이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호리키리 아야코라는 50대 여성을 만나고 나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을 공통분모로 하여 아홉번의 만남이 즐겁게 이어졌지만 열번째 만남에서 자신은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는 여자라며 이별을 통보받고 의아해 한다. 주소를 알아내 찾아간 그녀의 집 앞에서 그는 호리키리의 장애인 남편을 만나게 되고 그녀는 장애인 남편을 간병하게 위해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릴 때 자랐던 어촌으로 가서 장애인 여행 도우미를 만나면서 새로운 일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다섯 편 모두 퇴직을 하고 나서 경제적으로 그다지 풍요롭지 않은 생활을 하는 다섯 명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 후기에서도 저자가 언급했다시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나도 슬프다. 나도 역시 보통 사람이라면 이 주인공들처럼 살 수 밖에 없을 것인가. 다행히 다섯명 모두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출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의 위안을 얻게 된다. 다섯번째 이야기인 '여행도우미'에서 등장하는 다음 문장이 마음에 너무나 슬프게 다가와서 인용해 본다.
버블 붕괴 이후밖에 모르는 세대는 이처럼 혹독한 노동 환경을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고도성장과 버블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진다.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인데, 대다수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허덕이며 단 20엔이든 10엔이든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고, 1엔이라도 싼 선술집을 찾고, 맛있는 식사도 맛있는 술도 애초에 포기하며 살아간다. - p.313
이제 나에게 십여년 밖에 남지 않은 55세.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희망을 가지고 새출발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원을 좀더 확보해 두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