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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비극
국내도서
저자 : 엘러리 퀸(Ellery Queen) / 서계인역
출판 : 검은숲 201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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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42번 스트리트를 지나는 전차에서 할리 롱스트리스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죽는다. 롱스트리트는 주식 중개인으로서 존 드위트와 함께 드위트 앤드 롱스트리트 사를 공동운영중인 사람이다. 경찰은 롱스트리트의 죽음을 살인사건으로 추측하고 전차 내 승객 모두를 격리시키고 심문을 하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 롱스트리트가 죽었던 그 전차의 차장이었던 찰스 우드가 시체로 발견되며 하루 뒤 존 드위트가 살해당한다. 존 드위트는 롱스트리트 살해 피의자로 수사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세명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 사건의 실마리는 드루리 레인이라는 원로 배우가 풀어나간다. 하지만 드루리 레인 자신은 범인을 알 것 같다는 말만 할 뿐 사건의 해결에 적극적인 참여는 하지 않는다. 결국 드루리 레인의 추측대로 범인이 잡히게 되는데 그 과정은 고전 추리소설다운 반전을 제공한다. 470여페이지에 달하는 전체 내용 중 50여 페이지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는 치밀한 구성을 통해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한다.



소설은 전체 3막으로 구성되는데 막의 구분은 소설 전개에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희곡 같은 스타일로 각 장 시작 부분에 장소와 일시가 제공된다는 점이 현대 소설과의 비교했을 때 특징이 아닐까 싶다. 첫번째 살인사건과 두번째 살인사건 사이에 공백이 상당히 많고, 전체적으로 분량이 좀 많다보니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두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드루리 레인이 풀려난 이후 세번째 죽음을 맞게 되면서 사건은 급속도로 전개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주인공인 드루리 레인이 어떻게 범인을 추측해 내고 확신하게 되었는데 브루노 검사와 섬 경감 등에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추측의 방법이란 것은 섬 경감이 고백(p.451)한 대로 사람의 능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드루리 레인의 추측과 범인의 자백 내용이 같이 어우러지면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내용이 보면서 그동안 의문이 들었던 부분들이 해결되고 사건이 종결된다.


추리소설을 보통 여름이 읽어야 제 맛이라고들 한다. 나는 물론 여름에 읽기는 했지만 겨울이나 다른 계절에 읽어도 엘러리 퀸의 제맛을 느낄 수 있는 대표작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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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국내도서
저자 : 박하와 우주(Bakha Andwooju)
출판 : 예담 201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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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된 공간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 약간은 지루해가던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어난 놀라운 반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순간의 느낌이다.


책 속의 장준호 박사는 사형제도 폐지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학자로서 범죄행위(대부분 살인)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외상후 증후군 환자들의 정신적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10명의 환자들을 범죄피해자지원센터로 불러 모은다. 자신의 딸들 역시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큰 딸은 죽었고 작은 딸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모른다.



센터에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구한 사연들을 가지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충격으로 때로는 자살과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하는 그들의 정신적 고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범죄행위를 저지른 당사자들은 어떠한가. 아무리 사형제도로 이 세상에 종말을 고하게 해도 그들은 결국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편안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 않는가. 다음은 사형제도 폐지의 반대를 주장하는 장준호 박사의 말이다.


사형은 모든 범죄자들에게 적용되는 형벌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극악범들에게 불가피하게 내리는 사회 안전장치죠. 사형제도는 재범을 막고, 다른 범죄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징역 이상의 효과를 내는 형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p.32


하지만 범죄피해자의 정신적인 고통을 사형제도를 통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티브를 가지고 작가는 이 소설을 만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지훈은 술에 취하면 자신과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죽인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자살을 한다. 신문기자였던 도아는 결혼 1주년 기념일에 갑자기 상사가 요청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늦은 밤 귀가를 한다. 잠시 기념반지를 찾으러 간 틈을 타 아내는 침입자로부터 살인을 당한다. 인우는 여동생 선민을 납치한 괴한들에게 1억원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받는다. 경찰과 함께 약속 장소에 찾아갔지만 동생은 시체로 발견된다. 수애는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사무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중 유치원 화재사고 뉴스를 보게 된다. 화재가 난 유치원은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으로 아들 역시 화재로 생명을 잃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남편과도 이혼을 한다. 유나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에서 지점 총지배인으로 승진했다. 아이들을 봐줄 여력이 없어 보모를 고용하는데 쌍둥이 아이들은 보모에 의해 7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다. 민구는 사채업자에게 폭행을 당해 죽은 형의 시체를 발견하고 부분기억상실증에 걸려 일시적으로 형을 그의 인생에서 지워버린다. 다연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동갑내기 여자에게 납치당해 성폭행을 당하고 언니는 살해당한다. 다연은 장준호 박사의 딸이다.


이런 정신적인 피해를 살인자들에게 직접 경험하게 해서 고통을 받게 할 수는 없을까. 장준호 박사는 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도아에게 질문한다. "자네는 다른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인 살인범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때 도아는 대답한다. "그 녀석을 제손으로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저더로 그를 용서하라고 하더군요. 그게 제가 아내를 잃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요." 장준호 박사는 다시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그들이 피해자들에게 준 고통에 버금가는 고통을 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건지도 몰라." [pp.227~228]


아무튼 이런 피해를 안고 센터에 들어왔지만 불의의 사고로 조디악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다. 조디악 바이러스는 인간의 뇌를 감염시켜 감염자가 살인을 저지르도록 만드는 바이러스다. 그 이후로 피해자와 직원들이 하나 둘 목이 졸린 채로 살해 당하고 남은 자들은 두려워하며 서로를 의심한다. 결국 센터는 외부와 통제되고 센터 내에 발생한 사실 역시 외부로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며 피해자 일부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좌절된다. 앞서 말한대로 처음 한두명 시체로 발견되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살해 과정이 계속되면서 약간은 식상한 와중에 몇페이지를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낸다. 이 반전은 누구나 기대해도 좋다. 반전의 내용은 스포일러이므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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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늑대
국내도서
저자 : 넬레 노이하우스(Nele Neuhaus) / 김진아역
출판 : 북로드 201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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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언젠가 서점에서 소설 코너를 가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희한한' 제목의 책에 눈길이 가서 책 표지와 내용을 간략히 훑어보고 내려놓은 적이 몇번 있었다. 요즘에야 소설을 조금 읽고는 있지만 당시 나는 소설을 그리 즐겨 읽는 편이 아니어서 상식적인 차원에서 제목만 봐두고 다른 코너로 이동한 적이 많다. 이번에 읽게 된 <사악한 늑대>가 그 희한한 제목의 책을 썼던 저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것도 어찌보면 인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넬레 노이하우스. 독일 출신의 여성 소설가이다. 이 책은 타우누스 시리즈의 여섯번째 도서라고 한다. 역시 추리소설의 묘미는 범인이 누군지 알기 위해서는 퍼즐을 끝까지 맞춰봐야 한다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책의 2/3정도를 읽어도 범인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략 이사람이 아닐까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는데 결국 범죄집단의 우두머리로 밝혀졌다는 점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늘 그래왔듯이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강가에서 어린아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결국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태양의 아이들이라는 자선단체를 위장한 아동성폭력조직이었다. 그곳에서 학대를 받던 아이 중의 한명이 결혼까지 하게 되면서 새 삶을 찾았지만 학대를 받는 과정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다중인격이라는 일종의 분열증상이 나타났고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주변인물들이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겪은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동성폭력이라는 좀 많이 지저분한 주제로 결말이 나는 것이 못내 마음이 무거웠다. 정말 이런 조직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만약에 실제로 이런 조직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저히 응징해 주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난다.


중간중간에 결말의 복선이 될 것 같은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면서 읽었는데 저자가 결말로 이끌어가는 과정을 가끔씩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소설읽기의 또다른 묘미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시원한 여름을 보내기 위해 노이하우스의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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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꽃 (양장)
국내도서
저자 : 김별아
출판 : 해냄출판사 201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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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인 조반의 아들 조서로와 이귀산의 처 유씨와의 간통사건을 근거로 하여 상상력을 펼친 결과로 만들어졌다. 세종은 유씨의 사형을 집행하였으나 추후 자신의 형벌이 과했다는 점을 자인하였다 하니 이들의 사랑이 소설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충분한 상상력의 발원지가 된 듯 하다.



당신의 상황은 숭불정책을 취했던 고려가 무너지고 숭유억불정책으로 국시를 삼았던 조선이 건국되어 기틀이 잡히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당시의 간통이라는 것이 지금의 간통보다는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그 주요 피해자는 여성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청화당의 나라와 녹주의 나라는 확연히 달랐다. 새 나라의 기틀이 잡혀갈수록 그를 벗어난 것들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었다.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가혹한 처벌이 불가결했다. 하지만 죄가 같다 해도 벌은 달랐다. 서로는 권력의 가까이에 있었기에 그 속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언제나 표적이 되는 것은 더 악한 죄인이 아니라 더 약한 희생양임을.  - p.287


정치적 권력의 희생양으로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가 한 여자아이가 먼 친척뻘되는 할머니의 집에서 살게 된다. 여자아이는 부모가 불에 타 죽고 혼자 살아남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에서 지웠다. 할머니의 손자인 한 남자아이가 같이 살고 있었고 남자아이는 그 여자아이가 마음에 들어 푸른 구슬이라는 뜻의 '녹주'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다. 남자아이의 아버지는 조선왕조를 세우는데 일조한 탓에 후일 개국공신의 칭호를 받게 되는 조반이다. 조반의 아들 조서로는 이렇게 녹주라고 이름붙인 여자아이와 만나게 된다. 하지만 조서로의 어머니는 그 여자아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왕조가 바뀌어 개성에서 살던 조씨 집안은 개성에서 조선의 새로운 수도인 한양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의 어머니는 녹주를 외딴 절로 보내고 자신들만 이주하는 바람에 서로와 녹주는 헤어지게 된다.  녹주는 그 절에서 비구니 생활을 하면서도 서로를 잊지못해 미움과 사랑이 교차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 눅주는 절에 기거하던 중에 이귀산이라는, 대략 녹주보다 20세 이상 많은 남자를 만나 후처로 혼인관계에 이르게 되고 우연히 그 사실을 서로가 듣게 된다. 녹주와 서로는 오랜 시절을 따로 보낸 후에 다시 만나게 되고 사랑을 열매를 맺으려 한다.


그 사랑의 열매가 무엇이었는지는 역사적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세종실록 21권 세종5년(1423년) 9월 25일의 첫번째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 속의 녹주는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법 바깥에 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법이 나를 마땅히 죽여야 할 죄인이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법은 사람이 만든 것이니 법이 있기 전에 사람이 있을 터입니다. 사람이 있다면 어김없이 사랑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법도와 제도보다는 사랑이 먼저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죄는 다만 순연히 그 순서를 따른 것뿐입니다.  - p.334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지니고 있다. 녹주와 혼인했던 이귀산은 사랑했던 부인을 먼저 보내고 슬픔 속에 빠져있다가 녹주를 만나게 된다. "무릇 사람들은 슬픔 그 자체로 미치지 않는다. 슬픔은 가슴을 갈가리 찢고 영혼을 너덜너덜하게 헤집지만, 그것이 터져 나와 흘러넘치는 순간 독성을 사라진다.(p.214)" 저자는 사람의 슬픔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하지만 이귀산은 그럴 여력조차 없었던 슬픔속에 빠져있었다. 녹주가 암자에서 지낼 때 운공스님이 녹주의 마음 속을 꿰뚤어보고 한 말도 인상적이다. "불행과 경쟁하지 마라.(p.199)" "불행과 경쟁하노라면, 너도 모르게 이기고 싶어질 것이다. 설령 그 승리의 조건이 더 큰 불행일지라도.(p.200)"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 새드엔딩으로 끝나게 되었던 원인을 여럿 찾을 수 있곘지만 서로의 어머니와 청화당(서로의 외할머니)과의 관계가 그대로 아들 서로에게까지 전달된 것이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인 청화당이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서로 역시 자신의 어머니가 정말 자신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그들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들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나를 한번이라도 사랑했소? 진심으로 아끼고 어엿비 여겼소?" [서로의 어머니가 죽기 전의 청화당에게 한 말]  - p.97


"어머니, 단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소자를 어엿비 여긴 적이 있으셨습니까?" [서로가 죽기 직전의 어머니에게 한 말]  - p.264


이 부분이 이 간통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한편의 소설로 만들어내기까지 작가가 가장 공들인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청화당에서부터 자신의 딸인 서로의 어머니, 그리고 서로에게 이어지는 잘못된 내리사랑이 없었다면 이 소설의 스토리텔링은 그다지 탄탄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 그것이 목마릅니다. 어머니가 한 번도 양껏 주시지 않았던 사랑말입니다!"


끝내 마음 밑바닥의 말을 토하며 서로는 통곡했다. 결국엔 그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학대한 까닭도 사랑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사랑을 믿지 못했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받지 못한 채 자라난 아들은 끝내 갈급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p.268


나는 흥미롭게 읽었으나 전문가가 아니므로 문학작품의 수준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근데 소설은 정말 가끔 읽어줄 필요가 있다는 걸 이 책을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스토리의 재미라든가 작품성을 논하기는 힘들지만 처음 20여 페이지 안에 내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 수두룩하게 튀어나온다. 작패하다, 겅더리되다, 들놀다, 잡도리하다 같은 동사나 올차다, 날큰하다, 돌올하다, 푸새하다 같은 형용사를 비롯하여 피칠갑, 갈피짬, 얼뚱아기, 잔짐승, 몸피, 쟁기고기, 딸따니, 결찌, 어마지두 같은 명사들은 대부분 처음 듣는 단어들이다. 평소 자주 쓰는 말은 아니더라도 내가 한국사람이 맞았나 싶을 정도다. 내 한글 실력은 이 정도였다. 소설가라는 사람들의 상상력에도 놀랍다. 지금 막 읽기를 마친 '김별아'의 미친 상상력은 더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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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예언 (양장)
국내도서
저자 : 러디어드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 / 유지훈역
출판 : 지식의숲 201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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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링 하면 정글 북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읽었던 그 소설의 작가의 이름이 키플링이라는 것은 좀더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되었고 키플링이 미스터리 단편을 여러 편 썼다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책 마지막에 나오는 저자 소개에 따르면 키플링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인도에서 태어났고 인도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1907년 영미권 최초이자 최연소의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모든 백인이 야만저인 원주민들에게 유럽 문명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상이 작품속에 담기면서 당대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대부분 인도를 배경으로 쓴 그의 단편소설 중에 고딕 미스터리를 지향하는 10편을 묶어서 출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었지만 단편소설집을 읽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참고로 첫번째 보았던 단편소설집은 '여신과의 산책'이다. 리뷰보기)

 

일단 모노톤의 표지 디자인을 보면 뭔가 주술적이고 흑마술적인 느낌도 강하게 든다. 이 책의 타이틀을 차지한 작품은 '검은 예언'인데 제목 자체가 표지 디자인과도 상당히 어울리는 제목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대략 100년 전쯤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은 둘째치고 내용 자체가 그다지 미스터리스럽지 못하다. 고딕문학이라든가 고딕 미스터리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긴장감이 느껴지고 반전을 통한 쾌감을 기대했다면 조금은 기대수위를 낮추는게 좋을 듯 싶다. 일단 10편의 단편에서 대략 공통적으로 다룬 주제는 삶과 죽음, 현실과 공상, 죽음 이후의 삶, 유령과 영혼 등이다. 따라서 기대 수준을 조금 낮춘다면, 또는 고딕 미스터리가 표방하는 철학을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다면 충분히 흥미를 줄 수 있는 소설집이다. 죽은 아내를 만나러 가는 과정을 그린 '검은 예언', 남자로부터 상처를 받고 죽은 여자의 환영이 그 남자도 죽음이 이르게 한다는 '환영의 여인', 유령의 이야기가 현실과 공상을 착각하게 만드는 '실화',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악마적인 도시를 그린 '잔혹한 밤의 도시', 악마의 존재를 찾으려는 노력을 그린 '헌티드 서발턴' 등이 주요 수록 작품이다.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은 내용으로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휴식시간을 이용해 부담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집이다. '기이하고 애잔한 고딕 미스터리의 고전'이라는 홍보용 문구에 너무 기대하지는 말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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