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밀란 쿤데라, 민음사, 2012.
|
밀란 쿤데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게 된 이후이다. 1988년 고등학생 시절 문학소년을 자칭했던 나는 ‘문학소년이라면 이 정도는 읽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서점에서 구입은 했지만 끝까지 읽지 못한 소설로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책을 일고나서 서평을 써보자고 마음 먹었던게 벌써 1년 남짓의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여태 읽은 소설은 대부분 트렌디한 소설이 많아서 비교적 술술 읽히는 책들이었다. 유명한 문학작품이 반드시 어려워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밀란 쿤데라의 이 작품은 몰입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40여 페이지를 읽었는데도 여러 등장인물과 ‘그’와 ‘그녀’가 혼란스럽게 서술되는 것을 보고 답답하여 책을 덮었는데 제일 뒷부분에 간단한 내용 요약이 나와있었다.
이 요약을 보고 나니 책의 내용이 더 쉽게 다가왔다. 인물관계가 이해되고나니 두 남녀간의 밀고 당기는 연애소설과도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장마르크 이외의 다른 남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겪는 샹탈에 대한 심리묘사, 샹탈이 편지를 보고 다른 남자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장마르크에 대한 묘사가 절묘하다. 둘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소한 말로 오해하게 만들며 그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한 사람을 떠나 그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 가상의 존재를 동경하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그 사람으로 동일시하고 인식하는 과정. 방황, 권태, 질투의 연속인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찡한 감동이라기 보다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첫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금방 몰입이 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샹탈의 시각과 장마르크의 시각이 번갈아가면서 묘사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읽다보면 이런 서술에 매력을 느낀다. 두 사람간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가장 적절한 기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쿤데라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이 처음이다보니 다른 책은 어떤지 모르겠다. 일단 이 책은 각 chapter의 분량이 적어 중간중간이 읽고 그만두고 하기가 편하다는 점이 좋다.
마지막으로 본문 내용 중에 ‘눈’에 관해 묘사한 문장이 좋아서 인용해 본다.
'독서노트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상의 노래, 이승우, 민음사] - 폐쇄된 수도원에 숨겨진 음모와 비밀을 파헤치다 (0) | 2012.10.03 |
---|---|
[여신과의 산책, 이지민 등, 레디셋고] - 장르불문의 매력적인 단편소설집 (0) | 2012.07.14 |
<이게 바로 누와르>, 나서영, 심심, 2012. (0) | 2012.06.13 |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레드박스] - 과거에 대한 모든 기억은 소중하다 (0) | 2012.05.18 |
[브레인 해킹, 김규봉, 골든북미디어] - 나노 기술로 뇌를 해킹하다 (0) | 2012.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