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0일생, 김서진, 나무옆의자] - 유한한 인간이 가지는 무한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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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주인공 '정현재'의 동료 직원이자 애인이었던 '혜린'의 시체가 발견된 것으로 시작된다. 남부 지역 소도시 J시의 눈내리는 2월 어느날 혜린은 시체로 발견된다. 방송국 직원이었던 1979년생 정현재는 기혼이었지만 애인관계를 유지하던 방송국 작가 혜린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 만남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술에 취해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 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혜린의 사건은 그날 발생하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살았던 어른이다. 그런 지역적 유명세 때문인지 그의 아들, 즉 현재의 아버지는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이 유력해진다. 하지만 이 사건이 발생되고 나서 주위 사람들은 혜린의 살인자로 정현재를 의심하기 시작하며 그 화살이 그의 아버지에게까지 향한다.
살인자의 누명은 그의 할아버지에 의해 쉽게 벗겨졌지만 현재는 한때 사랑했던 사이인 혜린의 죽음에 배후가 있다고 판단하고 개인적인 조사를 시작한다. 조사과정에서 '만리'라는 이름의 여자가 25년 전 같은 지역에서 죽었던 사실을 파악하고 그 사건이 혜린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만리는 죽기 이전에 그 지역에서 '조개다방'을 운영하면서 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린 여성이다. 자신의 할아버지와도 각별한 사이였다고 알게 된 현재는 만리의 주변인물을 찾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는 조사 과정에서 만난 혜린의 언니 정희로부터 혜린이 '박대길'이라는 사람을 찾으러 다녔다는 말을 듣는다. 이야기는 박대길의 스토리와 교차된다. 박대길은 오래전(아마도 해방 이전의 시기가 될 것 같음)에 '정윤조'의 집에서 머슴으로 살았던 남성이다. 박대길은 정윤조의 누이인 정이조와 눈이 맞아 도망을 계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이조와 윤조를 죽이고 정윤조로 살아가게 된다. 오랜 세월 정윤조로 살아갔던 이 박대길이 바로 정현재의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마지막에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현재는 혜린의 살인사건으로 수감되면서 굳이 자신이 유죄가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이 박대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철저히 거짓된 모습으로 살았던 할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생 미래의 모습을 보며 또다른 동생이었던 혜린의 모습을 떠올린다. 열린 결말이다.
김서진 작가의 두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으면서 더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 2월 30일에 혜린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게 만든다. 또한 일제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60년이 넘는 시간을 관통하며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게 된 욕망에 집중한다.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나를 또다른 나로 포장하기도 한다. 어느 한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이 더 큰 욕망을 갖도록 만들며, 그 연쇄반응을 통해 욕망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진다. 결국 이 욕망의 사슬을 끊는 것은 개개인이 욕망을 절제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시작을 주인공인 현재가 시작한 것이다. 3대에 걸쳐서 흘러온 욕망의 사슬을 현재는 과감히 끊으려고 한다. 그 무한한 욕망을 가진 인간은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기억조차 간직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인 '현재'의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모든 것은 과거를 무너뜨리고 만들어 진 현재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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